Jul 6, 2012

이기봉, <흐린 방 the Cloudium>, 아르코미술관 (2012.5.18-7.15)


아르코미술관에서 이기봉 선생님의 <흐린 방>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간이 사유로 가득찬, 보이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들이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만큼 이미지가 이미지 자체로 인식되지 않고, 모호하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개별적인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 뭉뚱그려져 다가왔고, 선생님 작업에서 많이 사용되는 안개들이 공간 곳곳에서 몸을 감싸는 듯한, 지각되기보다는 몸의 감각이 공간을 겪는 듯한, 그런 인상들도 받았습니다.

관람 후 커피토크에 참여했는데요, 이기봉 선생님과 평론가 정현 선생님, 고원석 큐레이터님이 자리해 주셨습니다. 행사는 정현 선생님의 간략한 평론(?), 정현-이기봉 선생님 간의 대화,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정현 선생님은 이기봉 선생님의 작품의 키워드를 '불확실성'으로 보면서 이 불확실성이라는 것의 미술사적 자취(18세기 부터 19세기 이후 인상주의, 그리고 근대로 오면서 '불확실성'이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는데요, 그와 연결해서 시각과 인식이란 어떤 것인지, 메를로퐁티의 현상학과 프랑소와 챙의 이야기 등을 들어 말씀 해주셨습니다.

결국 가장 큰 이야기는 보는 것과 지각하는 것(관습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것 처럼 다시 보는 것, 보여지는 것 너머의 어떠함으로 사유하는 것)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 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기봉 선생님께서는 "어릴 적 부터 그림을 통해 세계를 접근해 왔다. 그리는 '행위'에 의해 물질을 인식했고, 결국 그림이나 작품들은 몸의 세계 (몸의 행위를 통해 세계가 인식된 결과물) 이며, 이것이 전시에서 드러나기를 바랐다."고 말씀해 주셨구요,

또한 선생님 작업에 등장하는 "하나의 캐릭터들-나무,책,안개,물 등-은 나와의 지속적 커뮤니케이션을 거친 뒤, 일종의 연극처럼 전시장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 커뮤니케이션 이라는 것은, "내가 그 대상을 바라보지만, 어느 순간 그 대상이 나를 보았다."라고 하신 것 처럼, '존재와 존재 사이의 교감'에 대한 말씀 같습니다.

그 외 아름다움과 날 것, 배움 등에 대한 이야기들 해주셨구요, "세계는 차갑지만 존재는 꿋꿋하며 스스로 운영되는 그 존재들은 아름답다.","사랑하지 않으면 세계는 다가오지 않는다." 라는 말씀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관객들의 질문에 앞서 "작품은 개인적이지만, 충분히 여러분이 경험해왔던 것"이라 하시며 전혀 어렵지 않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

몇 가지 질문이 오고 갔는데요, 저의 질문에 대한 것만 옮겨 적습니다.

Q. "2층에 전시된 <Cloudium>을 보면 거품 아래 존재하는 구슬형태의 텍스트-로 보여지는 것-가 있는데, 이것이 형태만 있지만 내용은 없다. 이 것은 형태 자체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너머의 어떠한 것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1)이 텍스트의 원형은 어디서 온건지, 스스로 쓰신 글인지. 2)텍스트가 구슬의 형태로 비워진 것은 일종의 열린 상태로 보아야 할 것 같은데, 해석의 자유로움을 위해 그리하신 건지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지?"

A. "구슬 자체는 사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playful한 것으로 구슬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실제로 작업실에는 구슬들이 움직이는 어떤 기계?같은 것도 있으시다고) 구슬은 우연에 따른 배열에 따라 의미체계로 보이기도 하고 그냥 구슬로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은 의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의미체계에 대한 것이다. 구슬 위에는 수많은 구슬(거품)이 있고 그 위에는 사람의 머리 형상을 한 구슬(모니터 속 두상)이 있는데, 그것들을 어찌보면 의미가 부유하는 것 처럼 보인다. 개별적인 구슬들 자체에 (의도적)의미들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그 전체가 의미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완결은 관객의 몫이다."


- 커피토크가 저에겐 굉장히 철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고생해주신 분들께, 그리고 좋은 말씀 많이 전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 위에 내용은 저의 임의로 옮겨적고 간추린 것으로, 혹 의미전달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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