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28, 2012

웅크린 순간들을 한 데 모아두는.


 굉장히 오랜만에 필름을 스캔했다. 총 세 롤의 필름이 있었는데, 게 중에는 잊을 때쯤 다시 꺼내봐야지 하고 굉장히 오래 묵혀둔 것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말도 안되게 3년 전 사진이 있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분의 얼굴이 있었고 위치가 흐릿한 공간이 있었다. 처음보고는 의아했다가 뚫어져라 보다 알았다. 그 때가 어느 때였는지 우리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그 조용한 사진 속에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있었고, 얼마나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는지, 하나씩 기억이 스며 올라왔다. 이미지 아래로 여러 겹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난 추억을 상기시켰다. 더불어, 다시 떠올려지지 않았으면 했던 사람의 얼굴, 같이 밟던 겨울의 얼음바닥, 정말 행복했었나보다 싶은 웃음, 익숙한 티셔츠의 이미지가 있었고

, 몇 컷이 지나가니 그 때의 시간들도 함께 지나가 사라졌다. 그런 날이 있었지. 그래 그랬었다. 사진은 이미 지나가고 없는 순간을 끌어 안고 있어서 한 장 한 장이 소중하다. 필름은 그 웅크린 순간들을 한 데 모아두는 상자 같아서 더욱 아끼게 되고.

 꽤 여러 장의 사진을 보면서 물론 씁쓸한 마음도 있었지만 내내 가슴이 벅찼다. 오랜만의 필름사진이어서 그랬던 것은 당연하고 영락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그득히 모여 있으니 행복했다. (내가 이런 얘기하면 웃길 수도 있지만) 보면 볼 수록 그냥 사진이 나 같았다. 글도 그렇지만 사진은 참 그 사람을 닮아 있어서 직접적인 대면보다도 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게 하는 듯 하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시선이니 그의 성향을 반영할 수 밖에. 어쨌거나 필름은 너무 매력적이다. 나중에 기회되면 사진이랑 글이랑 모아서 책 만들어 봐야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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