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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예, <Need What>, 종이 위에펜, 80x110cm, 2011 |
강남대로를 걷는데, 무심코 한 문장이 귀에 들어온다.
"탁월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소리가 나온 곳은 핸드폰 케이스 좌판 앞. 손님인 듯한 여자와 판매원인듯한 남자가 보였다. 아마도 여자가 좌판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십종류의 핸드폰 케이스 중에 적절한 하나를 고른 것일테다. 그 여자를 응대하던 남자의 넉살이 얼마나 좋던지, 참으로 밝고 쾌활하게 낯간지러운 문장들을 읊는다. 흔한 좌판 앞 풍경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걷던 방향으로 계속해 길을 걸어갔다. <탁월한 선택>. 그 말이 자꾸 입 속에 돌았다. 탁월한, 탁월하다, 선택, -한 선택, 탁월한 선택. 단어를 쪼개 입 속에서 굴려보고 좀 씹어도 본다.
<탁월한 선택>이라는 말 자체를 오랜만에 들어봤다. 탁월한 선택.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선택도 어려운데, 게다가 탁월하기까지 하단다. 자꾸 생각하면 할 수록 그 여자가 고른 핸드폰 케이스가 궁금해졌다. 그 여자는 그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으레히 사는 사람의 기분을 격려하는 장사꾼의 멘트였겠으나 그 여자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본인의 선택이 '탁월'하다고 느꼈을까?
'탁월하다'의 뜻은 남보다 두드러지게 뛰어난 것을 형용하는 형용사이다. 사전상의 예문으로는 <탁월한 선택>이 가장 먼저 올라와있다. 아마도 사용빈도수에 따른 순서일 것인데, 그 말,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오히려 좋은 뜻인데도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
나는 나의 선택들을 돌아본다. 눈을 떴을 때부터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다. 핸드폰 벨소리에 눈을 뜬 순간, 피곤으로 뻑뻑해진 눈에 인공눈물을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 5분만 더 잠을 청할 것인지 말 것인지, 길어질 것 같은 문자에 전화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먼저 양치를 하고 무언가 먹을 것인지, 무언가를 먹고 양치를 할 것인지, 오늘은 구두를 신을 것인지 운동화를 신을 것인지, 선글라스를 이 걸 쓸 것인지 저 걸 쓸 것인지, 버스를 탈 것인지 걸을 것인지, 밥을 먹으러 이 식당에 갈 것인지 저 식당에 갈 것인지, 커피를 여기서 마실지 저기서 마실지, 커피 마시고 나왔는데 다음 약속자리에서 또 커피를 마실지 안 마실지, 새로운 제안에 이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서점에서 이 책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 다시 시간을 되돌려 바라보면 머리가 지끈대도록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지나있다.
우리는 매 상황마다 스스로의 기준에서 '적절한' 선택을 한다. 스스로의 기준은 사회적인 학습, 내재적인 경험 등에 의해 세워지며, 그것은 선택 상황 속에서의 판단을 결정짓는다. 우리는 어느 때에는 빠르고 명료한 선택을 하지만, 어느 때에는 선택을 미루고 그로 인한 수 없는 고민에 빠진다. 적절하지 못한 선택과 그로인한 실패의 두려움이 선택을 보류하게 만들고, 그 가늠의 과정에서 우리는 가히 곤란한 경험을 겪게된다.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참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각자의 상황들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때에는, 정말로 머리에서 손 두 개가 나와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기분이 든다. 머리통에서 손이 나온다는 상상도 아프지만, 나와버린 두 개의 손이 가위니 보니 바위니 하면서 이기기위해 들썩이는 것도 머리가 아프다. 그러니 나는 굳이 탁월한 선택보다는 매 순간 그저 <적절한 선택>이나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은 그냥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안일하고 편안한 세계에서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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