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분명히 질서는 존재한다
이지원
물은 세계의 일부이자
인간의 삶에 있어 더 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요소이다. 앨리스정alice
jung은 이번 작업에서 이 <물>을
담았다. 작가는 하얀색 그물에 하늘색과 파란색의 리본을 빼곡하게 엮어 물의 표면적 이미지를 나타내고, 정방형 캔버스에 카오스이론chaos theory[1]을
담은 컬러풀한 마블링 작업을 얹혔다. 더하여 물 이미지를 채집하여 그 위에 카오스이론을 설명하는 코흐
곡선koch curve[2]의
공식을 마블링이미지와 함께 구현했다. 여기서 물은 우리가 보고 마시는 일차원적 의미를 넘어서는, 세계를 보는 통로로서 작용한다. 작가는 물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며
손으로 잡아 가둘 수 없고 규정지을 수도 없는 대상을 일종의 질서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카오스 이론을 이에 대입하여 작업을 만들어나간다. 하여, 시작은 물이었지만 결국은 세계를 이루는-보이지 않는-질서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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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jung_so tired of feeling blue_가변크기_Mixed Media_2013 |
작업의 첫 시작은
푸른빛 리본이 넘실거리는 <so tired of feeling blue>이다. 작가는 물을 형상화 하기 위해 일정한 길이의 푸른빛 리본들을 하나씩 그물에 엮었다. 작품에 쓰인 재료 자체가 유동적인터라 작품이 바닥에 있을 때에는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듯 하고, 기둥 위에 걸렸을 때는 폭포수가 내려오는 듯 했다. 물이 위치하는
곳에 따라 제 모습을 달리하듯 이 작업 또한 지속적으로 제 몸을 바꾼다. 덕분에 공간 내부에 설치된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물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이 된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물을
상징하는 요소를 활용하여 관객의 감각을 확장시킨다. 작품은 힘 들이지 않으며 공간을 새롭게 하고 있다. 하늘색과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리본들이 서로 몸을 뒤섞으며 물을 이야기한다. 이
물은 당신이 보았던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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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jung_laws of chaos_각 30x30cm_digital painting_2013 |
<laws of chaos>로 명명하는 마블링 작업에는 여러 겹의 레이어가 존재한다. 작가는 물 위에 마블링 물감을 뿌리고 이를 여러장의 종이에 찍어냈다. 이
후 수학프로그램에 카오스 이론의 공식을 넣어 기하학적 도형의 형태를 얻어내고, 이 둘을 조형적으로 결합한다. 작가는 물에서 얻어낸 이미지(마블링)위에 카오스이론을 대입함으로써 설명할 수 없고 불완전해 보이지만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질서를 나타내고자 했다. 이미지는 물이 흐르는 듯 유영하면서도, 특정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프랙탈 기하학fractal geometry[3]을
적용한 작품 같은 경우, 도형의 일부분에서 전체의 형상이 보인다. 도형의
내부로 들어가면 또 다른 전체가 나타나고, 그 내부에 또 다른 전체가 나타나는 형식이다. 이렇듯 일정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이루는 것이 카오스이론의 특징이다. 작가는 물 또한 이러한 질서를 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물을 설명할 수 있다면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질서 또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카오스이론과 접목된
개념은 <3x4/3>시리즈에서도 볼 수 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시구성원들은 ‘물’의 이미지를 각기 채집하여
공유하기 시작한다. 한강, 저 멀리 라오스강, 인터넷 어딘가에서 찾은 신비로운 샘, 화장실 변기, 고양이의 물 그릇, 편의점 진열대에서 채집되어 온 이미지들은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 본 것과 보지 않은 것, 친숙한
것과 친숙하지 않은 것 사이의 균열을 보여준다. 물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찍지만 수많은 상황들이 뒤섞여있다. 작가는 이렇게 채집된 물 이미지 위에 카오스이론을 설명하는 코흐곡선의 공식인
‘3x3/4’을 반복적으로 구성했다. 물이 담긴 각 상황들은 유한하지만 그것들의 집합은
무한하다. 코흐곡선은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이 공존하는 이론으로, 시공간을
관통하는 질서가 3x3/4이라는 수학적 언어로 대변되는 것이다. 한
쪽 벽을 가득 메우는 물의 이미지와 수학공식은 물 이상의 세계, 우주를 담고서 지속적으로 생동한다.
피타고라스는 ‘수는 만물의 근원이다.’[4]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수가 우주의 원리이며, 우주의 모든
것은 수학적인 질서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주 만물이 수로 바뀔 수 있다면, 우주는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미디어아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5]
여기서 카오스이론과 피타고라스의 언급이 동시에 이야기 하는 것은 불분명하고 비물질적인것들 사이에도 분명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앨리스정의 작업은 이것의 연장선에 서 있다. 작가는 수와 조형언어를
결합하여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다. 이것은 특정사물이나 과학적 물질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나, 우리와 그들, 그들과
우리, 이 모든 인간적 관계에도 질서는 숨쉬고 있다. 다만
증명되지 않고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여전히 세계는 혼돈chaos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분명히 질서는 존재한다. 그것이
수학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우리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1] 카오스이론chaos theory: 겉으로 보기에는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으로 보이면서도 나름대로 질서와 규칙성을 지니고 있는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이것은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 것처럼 안정적으로
보이면서도 안정적이지 않고, 안정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안정적인 여러 현상을 설명한다. (출처: 두산백과)
[2] 코흐 곡선koch curve: 카오스 이론을 설명하는 기하학의 종류 중 하나. 코흐
곡선의 둘레값을 구하는 공식은 3x(3/4)ⁿ=∞으로, 어느
값을 곱하더라도 무한의 값이 나온다. 코흐곡선은 유한한 면적을 갖더라도 무한의 둘레를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출처: 박성일의 역사문화사전)
[3] 프랙탈
기하학fractal geometry: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소수(小數)차원을
특징으로 갖는 형상을 일컫는다. ‘프랙탈’이란 이름은 1975년 B.B.만델브로에 의해 지어졌으나, 이러한 형상들에 관한 추상적 논의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칸토어집합, 코흐눈송이, 시어핀스키삼각형 등이 그 예이다. (출처: 두산백과)
[4] ‘수는 만물의
근원이다’: 물질세계에 있는 것은 점, 선, 면(삼각형), 입체(사면체)로 이루어져 있고 이 점, 선, 면, 입체는 각각 1, 2, 3,
4에 대응하기에, 물질세계에 있는 것은 모두 수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수로 물질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이는 피타고라스가 아닌
피타고라스주의자들에 의한 주장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출처: 박일호,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우주론>, 네이버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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