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15, 2011

살림체질

1
 어제는 퇴근하고 돌아와서 부엌 찬장 정리를 신나게 했다. 먼지 묻은 접시랑 기름때 묵은 집기들 몽땅 꺼내 뜨거운물로 깨끗히 씻겼다. 반짝반짝 거려질 때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안쓰는 플라스틱통도 모두 버리고 다시 그릇들을 모두 재정비. 찬장에 안쓰는데 버리긴 좀 그래서 넣어둔 것 같은, 잡다한 것들을 너무 많이 만나 놀랐고, 부엌을 지키는 이의 부재에 조금, 아주 조금 쓸쓸함을 느꼈다. 그래도 괜찮다.


2
 요즘은 밤에 동생 먹을거리를 챙겨두고 잔다. 이를테면 아침에 먹을 샐러드라든가 과일이라든가 샌드위치 라든가 그런 간단하고 가벼운 것들. 그런데 이것들이 생각보다 손질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과일이나 야채는 생으로 먹으니까 농약손질을 꼼꼼히 해야한다. 그래서 새로 과일이나 야채를 사오면 식초물에 담구고 고인물에 헹구고 적당하게 썰어 물기를 빼고... 등등의 이 과정을 거치야만 한다. 손이 많이 가서 힘든것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말끔히 씻어진 것들을 담아 냉장고에 넣을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 정말 크게 느끼는 건데 식구들의 건강은 부엌을 지키는 사람의 부지런함과 지혜에 달려있다. 별 거 아닌것 같지만 재료손질 꼼꼼히 하는 것 부터 어떤 먹을거리를 정해 조리하는지에 따라 식성이 달라지고 몸이 달라진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면 나는 편하지만, 내 식구들에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이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동생은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내가 챙겨둔 것을 먹고 나간다. 그리고 문자를 하나씩 보내놓는데, 맛있다고 하면 그 말 한마디가 날 기쁘게 한다. 번거롭던 어쨌던 간에 이런 말 한마디가 그런걸 모두  날려버리는 것이다.


3
 가끔씩 나는 살림체질인가?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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