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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마메는 방 안을 새삼 천천히 둘러보았다. 영락없는 모델룸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청결하고 통일감 있고 필요한 건 모두 갖춰져 있다. 하지만 개성 없이 데면데면한, 그냥 종이로 만든 연극 소품 같은 것이다. 만일 내가 이런 곳에서 죽게 된다면 그건 별로 유쾌한 죽음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가령 무대 배경을 내 맘에 드는 것으로 바꿔본들, 유쾌한 죽음이라는 것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게다가 생각해보면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그 자체가 거대한 모델 룸 같은 게 아닐까. 들어와서 거기에 자리잡고 앉아 차를 마시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그리고 시간이 되면 인사를 하고 나간다. 그곳에 있는 모든 가구는 임시의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창문에 걸린 달 역시 종이로 만든 소품일지도 모른다.
- 무라카미 하루키, <1Q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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