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13, 2012

<원더러스트: 또 다른 언덕 너머로 가는 끊임없는 여정>, 아트선재센터 (2012.6.23-8.12)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독일어 단어일 '원더러스트'는 19세기 초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보여준 인생과 자연에 대한 태도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원더러스트'라는 말은 관습과 평온한 일상을 내던지고 새로운 지평과 진정한 체험을 찾아 헤매는 끝없는 욕망을 드러낸다. 물론 이번에 서울에서 전시를 갖는 다섯 예술가를 묶어 얘기할 때 이 단어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프란시스 알리스호노레도 같은 작가의 작품 세계는 예술가로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깨닫기 위해 전 세계를 걷고 이동하는 것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작업은 걷는 행위와 결합되기도 하고 갑작스레 사회적,정치적 음조를 띠기도 한다. 이 작가들에게 '걷기'는 자신의 결정에 뒤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자 물리학 법칙을 새로운 사변적 법칙들로 갈아치울 준비가 돼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더러스트'는 죠엘 투엘링스의 개념 미술 작업에 담긴 심오하고 시적인 면을 가리키기에 더 없이 적합한 표현이기도 하다. 투엘링스는 인간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유물-기호와 의미의 시초-에 놀라운 기운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투엘링스의 작업은 가장 유명한 벨기에 예술가인 마르셀 브로타에스 에게서 느겨지는 충동, 곧 답답하고 억압적인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안식처를 만들고자 하는 충동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브로타에스는 야자수와 정원 의자, 백과사전의 도판들로 꾸민 <Winter Garden>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 한다. 백과사전의 도판들은 우리의상상력을 자극하여 시공간을 거스르는 여행으로 이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가는 발명 천재로 명성이 자자한 파나마렌코다. 파나마렌코의 작업은 자신이 맞닥뜨렸던 공학적 난제에 대해 갖가지 시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원더러스트'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파나마렌코의 작업은 완벽하게 가공된 현대 서울의 실체에 대한 논평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 기획자 한스 마리아 드 울프Hans Maria de Wolf   >>>이번 전시 텍스트 전문 및 작품 보기




<Fransis Alys, Duett, 1999>

<원더러스트>전은 벨기에의 저명한 예술가 다섯 명의 작품을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전시다. 사실 나에게는 좀 생소한 작가들이었고, 그래서 조금의 사전지식도 없었으며, 그래서 좀 애매하기도 했다. 작품과 텍스트물에 있는 도면을 매치해가며 작품을 보느라 다소 정신이 없었다. 시간을 들여서 보다보니 그래도 좀 낫긴 했지만.

'원더러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적인 느낌이긴 하다. 어렴풋하게 전시가 여정과 맞닿은 느낌을 안겨주는데, 나의 이해능력 부족인지 전체가 와닿지는 않더라.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작품들은 몇 있었다.

위에 <Duett>이라는 영상은 프란시스 알리스의 작품으로, 호노레도와의 협업으로 이루어 졌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최된 1999년 6월, 호노레도와 프란시스 알리스는 각기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같은 날 베니스에 도착한 후, 각각 대형 튜바의 위, 아래 반쪽씩을 가지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3일 동안을 걷는다.

이 영상은 서로를 만나기 위해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흰 셔츠에 검정색 바지를 입은 그 들의 등에는 A와 B라는 알파벳이 적혀있다. 언제 어떻게 만날지도 모르지만 '만남'을 위해 걷고 걷는다. 나도 함께 생각으로 걸어봤다. 저렇게 걷고 있는 사람의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있을까.

 '산보는 알리스에게 주로 생각의 지평을 여는 조건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프란시스 알리스는 산보하면서 주변에 널려있는, 그러나 이전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시적 감흥에 접근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이해가 호노레도와 맞닿아 있어, 그런 이해를 기반으로 이들은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Honore d'O, Wanderlust Roll Book, 2006>


<Duett> 영상에 등장하는 한 사람인 호노레도는 실제 한국을 방문하여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사진들을 촬영하였다. 언뜻 듣기로 부산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당시 사용했던 여행 가방 속에 촬영한 사진들을 롤 형태로 담아 두어 전시하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롤북 시리즈는 만지고 돌려봄으로써 그 사이 말려있는 것들의 이미지를 실제로 볼 수 있었는데, 이 여행가방 속 롤은 만지면 안된다고 한다.

같은 시리즈로 보이는데 왜 만지면 안되는지 호기심이 생겨 안내원에게 물었는데 이유를 모르고 기획자가 그렇게 주의를 주었다고만 답했다. 얼마 전 작업하는 친구들이랑 전시장 내부에서 지키고 서 있는 안내원들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작품에 대한 이해 없이 그냥 서 있기만 하는건지가 다시 한번 충격이다. 전시장안내원이 작품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의 이상과 같은 것일까. 어쨌든 여전히 궁금하기는 하다. 훼손의 이유일까. 그렇다면 나머지 두 롤북 시리즈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어쨌든 호노레도의 롤북들과 수집된 각종 엽서들, 마르셀 브로테어스의 야자수가 있는 정원들은 이국의 정취를 잔뜩 풍겨냈다. 뒤샹의 상자도 있었는데,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뒤샹의 개념과 사고에 크게 영향을 받았단다. (그 외 영상 작업들이 또 있었는데 영어로만 계속 뭐라고 말하고 있어서 오잉? 하다가 다른거 봤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영어의 중요성을 실감..)

전시는 '여행자의 마음, 길, 걷기, 관찰하기, 그럼으로 보여지는 것들, 다가오고 영감을 주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다시 보는 것, 처음 보듯이 보는 것. 예술가의 그러한 시선들은 작품을 통해 관객의 시선의 변화를 이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걷는 모든 예술가들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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