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4, 2012

마음의 공백


흰색책상 위로 귤껍질이 제 멋대로 나뒹군다. 그 옆으로는 볼펜 한 자루, 손톱깎기와 인공눈물, 어디서 들어온 것인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느 교회의 동그란 탁상용 시계와 작년에 선물 받은 립스틱이 놓여있다. 책상 아래에는 작고 네모난 집 속에서 라울이가 잠을 잔다. 간간히, 그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 쿠션에서 바스락 소리가 난다.

같은 곡을 여섯번, 아니 한 일곱번쯤 반복해서 듣고 있다. 이 곡이 어디 쯤에서 끝나는지 어디 쯤에서 다시 시작되는지는 모른다. 끝나지 않고 계속 되는 듯이, 그리 들린다. 목소리도 악기소리도 하나로 녹아들어서 공간의 공백이 채워진다. 거기에 가끔 골목 앞에 차가 지나가며 소리가 덧대어져 들어온다.

가끔 틀어둔 음악을 절대로 끄지 못할 때가 있다. 이는 음악마저 꺼버리면
 공간이 너무나 적막해질 것 같은 막막함에서 비롯된다. 공간의 공백이야 물리적으로는 음악이 틀어져 있든 아니든 똑같을 것인데, 그래도 이 것마저 사라지면 내가 너무 덩그라니 남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잠이 들기 전, 꽤나 넉넉히 예약종료 시간을 맞춰두고 계속해서 음악을 트는 것이다.

마음이 허전해지면 공간도 허전해지고, 공간이 허전해지면 내 몸도 벌거벗겨져 외딴 곳에 세워진다. 그게 너무 막막한지라 누구 하나 부르지도 못하는 초라한 심정이랄까. 어찌되었든 벌거벗은 몸으로는 어디도 갈 수 없다. 그런 고집들이 나를 막아서고 입을 꾹 다물게 한다. 힘이 들어간 다문입술을 말 없이 원망한다. 허나 그래봐야 아무 소용 없는 것을.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