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9, 2013

김애란, <영원한 화자>



그리하여, 한번 더, 그리하여 여전히ㅡ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상상한다. 나는 나에게서 당신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가아무리 나라고 해도 나를 상상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모습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상상을 빌려오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상상한다. 저 사람은 열등감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달변가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열등감도 많고 달변가이지만 어쨋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믿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나는 긴 주소지, 나는 제목만 따라 부르는 팝송, 나는 사진처럼 언제나 조금씩 잘린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해는가보다,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이다. 나는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그러나 무엇에나 쉽게 감탄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들을 미워하는 사람, 나는 뻔한 사람, 그러나 당신이 뻔하다는 사실에 불쾌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이것저것을 긁어보으지만 당신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말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관심없는 이성의 고백처럼 언제나 조금씩 지루해진다.

나는 기다리기만 하며 살고 싶지 않았던 사람, 나는 변명만 하고 살고 싶지도 않았던 사람, 나는 내가 경멸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사람, 나는 아르바이트하느라 쩔쩔매는 시간에 악기를 배워보고 싶었던 사람, 나는 당신의 고통을 소문낸 사람,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사람, 나는 진동칫솔과 에어브라를 갖고 싶어했던 사람, 나는 오래전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던 사람, 나는 여전히 진동칫솔이 없는 사람,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 나는 세금을 받으러 온 주인의 기척이 들리면 집에 없는 척하는 사람, 나는 점점 여기 없는 사람인 척하는 사람, 나는 여기 없는 척하느라 당신이 불러도 대답하지 못했던 사람, 그러나 그때 사실 당신 근처까지 갔던 사람.... 하여 나는 이 많은 말들 속에서도 당신이 끝끝내 나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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