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1, 2013

<미국미술 300년>, 국립중앙박물관 (2013.2.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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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전시의 타이틀을 듣고는 좀 생소했다. 서양미술300년, 인상주의, 바로크미술... 등 특정시대의 사조나 특정 화가를 집중하는 전시는 여럿 있었으나 구체적인 국가가 언급되는 전시는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번전시는 <미국미술300년>전으로, 과거 300년 동안의 미국미술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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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미술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미국이라는 땅은 일단 다인종의 다문화적인 성격이 매우 강한 지형이다. 초기 유럽인들부터 아시아계 이주민들, 원주민, 아프리카 노예 등 다양한 인종과 신분이 뒤섞이며 발전해 온 미국은 어느 국가보다도 더 다양한 가치관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사실 미국의 고유한 과거의 특성만을 이야기 한다기보다는 그 지형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의 세계관이 변화함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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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시대에 따라 6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지며, 각 섹션마다 각기 다른 화풍의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는 연대기적으로 미국이 변화해온 과정과 구성원들의 변화된 세계관을 보여주고, 그와 동시에 예술가가 담는 대상이 달라지며 표현방식 또한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오늘은 개별적인 구성에 따른 전시의 시대적배경과 주요 작품들을 소개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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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1 아메리카의 사람들- 17~18세기 미국땅은 각국의 이민자와 탐험가와 정착민, 망명자들, 원주민들이 모여 매우 다양한 계층과 인종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이시기의 미국 화단에서는 초상화가 주를 이루었는데, 어느 것은 전통적인 양식으로, 어느것은 소박한 표현으로 나타나고있다. 당시의 초상화는 그 표현방식과 담겨진 인물의 분위기로 구별이 되고 있는데, 이것이 다양한 집단을 구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섹션에서는  다양한 초상화들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조셉 배저의 <존 게리>는 고작 3살 8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상류층의 자제답게 아주 기품이 있고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만약 평범한 신분을 가진 평범한 아이였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화폭에 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그림과 가까운 곳에 있는 존 싱글턴 코플리의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인> 작품 역시, 부유한 신분을 가지고 있던 인물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전통적 양식에 따라 치마폭 주름 하나, 옷 소매의 레이스 하나하나를 세밀하고 정교하게 표현하여 그들의 고급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더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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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섹션 안 쪽에는 또 다른 부스형태로 <18세기의 응접실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번전시는 이처럼 평면회화 뿐만 아니라 당시에 실제 사용되는 가구들을 함께 구성함으로써, 그들의 생활상을 조금 더 면밀히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림 속의 가족은 당시 10년간 필라델피아의 거상으로 지냈던 ‘캐드왈라더’ 가로, 이들의 저택은 당시 가장 높은 수준의 예술을 보여줬었다고 한다. 가구를 비롯하여 함께 배치되어있는 각종 집기와 장식품들은 미국 공예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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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2 동부에서 서부로- 19세기 중반 무렵, 미국의 자연은 국가의 정체성을 의미했다. 새로운 정착민들이 끝 없는 땅과 푸르른 대지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때 허드슨강 화파로 불리는 미술가들은 아름다운 풍경화를 통해서 신의 축복이 미국인들을 지켜준다는 것을 표현했고, 이번 섹션에서는 그때의 풍경화들을 여러점 볼 수 있다. 지금의 미국은 자신들의 개발논리로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는데 당시 미국은 자연을 신의 축복으로 여겼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광활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당시의 순수한 자연풍경을 짐작케 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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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콜의 <인물이 있는 풍경: ‘모히칸족의 최후’의 한 장면>. 이 작품은 소설 <모히칸 족의 최후>속의 풍경을 그려낸 것이다. 이미지로 짐작해보건데, <모히칸 족의 최후>는 종족간의 대립을 담은 소설이었던 듯하다. 작가는 광활한 대지를 강조하여 표현하면서, 소설 속의 비극적 장면을 극대화 시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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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중반에는 철도와 고속도로 등 대규모 토목공사가 시작되면서 원주민은 본래의 거주지에서 밀려나거나 일꾼으로서 동원됐다. 뒷쪽을 보면 십자가로 보이는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교회를 짓고 있는 광경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작가는 종교적 양식의 건축물을 짓는 과정을 담음으로써 종교가 들어왔음을 알리고, 북아메리카 원주민 땅의 상징성을 반영한다. 이 그림은 굽은 등의 무덤덤한 표정의 원주민이 인상적이었는데, 오히려 밝은 의상과 배경때문에 상황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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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유럽인들이 도착하면서 원주민의 삶은 변했지만 여전히 많은 원주민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3천년 전부터 현재까지 자신들만의 특색이 담긴 각종 공예품들을 만들어왔는데, ‘아프리카 원주민 미술’ 섹션에서는 그들이 만든 도자기, 인형, 직물, 수채화, 바구니, 가면 등을 볼 수 있다. 부족마다의 취향이 반영된 듯한 다양한 직물의 패턴은 현대의 것과 비교하여 조금도 촌스럽지 않고 장신구 또한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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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섹션이 끝나고 세번째 섹션으로 들어가는 지점에는 다음과 같은 연대기표가 있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인 성격이 크기 때문에 연대기적인 특징을 알고 보는 것이 전시 이해에 큰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미국의 역사를 자세히 알고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각 시기별 주요 사건들을 인지하며 전시를 보다 보니 훨씬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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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3 삶과 일상의 이미지- 19세기의 미국인들은 보다 일상적인 사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일상을 담는 풍속화들이 유행했는데 일상적인 것을 그리면서도 교묘하게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메세지를 담는 작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급격한 산업화의 반대급부로 사냥과 항해, 전통 수공예품에도 주목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입구쪽에는 여러점의 장신구들이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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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작품은 농사일에 대한 풍경이다. 그림을 그냥 봤을 땐 동화같은 느낌이 있지만 이미지가 그렇게 단순히 끝나는 것 같지는 않다. 작품의 제목이 성경구절 중 하나라는데, 밭을 일구는 이의 뒤에 여러채의 집이 있는 것을 보아, ‘열심히 일을 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라는 계몽적인 의도가 담겨있는 것 같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잘살거야, 라는 식의 화이팅 넘치는 그림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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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섹션에서는 기존에는 보이지 않았던 개인의 연애사도 볼 수 있다. 새침하게 튕기는 듯한 여성의 몸짓과 잔뜩 몸을 여성쪽으로 당기고 있는 남성의 모습이 재미나다. 당시 사회가 어느정도 안정되어 갔기 때문에, 예술가의 시선이 좀 더 일상적이고 세부적인 것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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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의 응접실’은 앞서 보았던 ‘18세기의 응접실’과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보다 더 장식적이어진 응접실 가구와 실제보다 더 화려하고 풍성한 정물화는 응접실 주인의 부를 상징하는 듯 하다. 사이드에 놓인 찻주전자나 디저트 접시등이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여주었는데, 가만히 저 풍경을 바라보며, 그 시기에는 저 테이블에 어떤 사람이 앉아서 어떤 디저트를 먹었을까를  상상해보았다.

Section4 세계로 향한 미국- 19세기 말, 독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미국인들은 서부지역개척과 다양한 방식의 개발, 도시화 등으로 국가적 자부심을 만끽했다. 대호황시대를 거치며 부가 축적되자 사람들은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를 느꼈고 각종 미술품으로 집안을 채우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네번째 섹션에는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화려한 금속장신구등이 많이 등장한다. 내가 태어나기 100여년도 전에 만들어진 탁상시계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는데 이 밖에도 다양한 장신구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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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기 미국 공예미술에는 아시아 중에서도 일본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동양적인패턴과 장식이 유행했고, 가구만 보아도 앞서 보았던 빅토리아식 가구에서 많이 소담해진 스타일을 볼 수 있다. 일본미술의 우키요에가 인상파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구에도 일본스러운 양식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 이 시기에는 화려한 장식품들과 함께 파리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여럿 있다.  사진이 발명 된 이후 회화의 판도가 바뀌었듯이, 이 곳 또한 그러한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미국작가로서는 유일하게 인상파 전시에 참석한 메리카사트의 작품이 눈에 띈다. 특유의 모자시리즈는 여성성과 부드러움을 돋보였다. 다니엘가버가 그의 딸을 그린 작품 <태니스>는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내가 함께 받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Section5 미국의 근대- 20세기 초 미국은 빠르게 도시화 되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로 이주했고, 당시의 미술가들은 도시의 삶을 관찰한 대로 화폭에 담아냈다. 주요 화가 중 하나인 로버트 헨라이는 “당신이 느끼는 것을 그려라. 본 것을 그려라. 사실 그대로를 그려라.” 라고 했다고.  그러한 선언적인 문구에서도 느껴지듯이 이 시기 미술품들은 아름다움을 찬미하기 보다는 현상을 그대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벤 샨의 <거의 모두가 신문을 읽는다> 같은 경우는, 제목은 모두가 신문을 읽는다고 하지만(필라델피아 신문의 연재만화 속 유명문구라고.) 사실 화면은 신문을 읽지 않는 아주머니들로 채워져 있으며, 배경과 인물의 대비를 통해 도시 속 만연한 빈부격차를 나타냈다. 이러한 사회적 리얼리즘의 흐름과 동시에, 모더니스트들은 추상과 입체주의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양상을 띈다. 이 시기에는 조지아 오키프, 찰스 쉴러 등이 등장하며 미국적인 문화를 표방하는 대상들-재즈, 선인장, 동물의 뼈 등-을 표현했고,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좀 더 다양한 형태의 표현양식들이 나타났다. 시대가 후기로 갈 수록 미술 내에서도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전파되어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Section6 1945년 이후의 미국미술- 미국미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이 아방가르드 미술의 국제적 거점이 되면서 급격히 진화했다. 마지막 여섯번째 섹션에서는 신체행위를 동반한 추상표현주의로 유명한 잭슨폴록, 색면 추상의 마크 로스코, 마더웰 등의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마더웰의 작품 같은 경우에는 서예적 성격의 붓터치를 살펴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미국 고유의 특성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시대적인 배경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커다란 화폭에 시원하게 뻗어진 붓터치는, 추상표현의 강력한 감각을 몸 소 체험하게 하는 요소였다. 이후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팝아티스트 앤디워홀의 작품과 로버트 라우센 버그의 작품을 바라보면서는 각각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로 변화해가는 미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캘리포니아 가구들을 보면서는 미국 특유의 실용성과 활력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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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모두 보고 나왔더니, 전시장 출구 쪽에 전시관람후기를 적는 코너가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까?’ 하는 마음으로 넘겨다 짚고 보고 있었는데, 보다보니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벤샨의 <모두가 신문을 본다>를 패러디해 <모두가 신문을 본다>라고 표현을 한 후기가 있는가 하면, 조지아 오키프의 <분홍장미가 있는 말의 두개골>를 보고 '말이 죽어서 슬펐다'는 아이의 후기, '사진 같지 않아서 재미없었다'는 의견이나 찰스 <플라이우드>의자가 대표적인 예술품으로 전시되어 기뻤다는 디자이너의 후기 등이 있었다. 남녀노소 다양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나의 나름의 감상을 가지고 나왔다가 다른 사람의 감상을 봄으로써 감상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된 것 같다.

전시장 바깥에는 간략한 형태의 아트샵이 있어 이번 전시와 관련한 도록과 각종 아트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도록은 휴대가 간편한 크기로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의 도판과 설명이 충실히 들어간 구성으로 되어있다. 시대적인 분위기나 도상학적 해석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고전미술작품들인 만큼 도록이 전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어준다. 그 외에 유명작들로 이루어진 퍼즐, 안경 수건 등의 아트상품이 있으며, 별도로 MOMA에서 판매되는 아트상품들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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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전시는 반 고흐전이나 피카소 전처럼 한 작가의 작품에 대해 집중 조명하는 명화전이 아니라, 한 국가의 연대기적인 성격을 살피며 구성한 전시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미술사조에 대해 살펴볼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작품과 작가를 한 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작품감상이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도록 배려한 설명캡션이나 구성, 동선들이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300년을 조명한다기 보다는, 미술사에서의 300년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더하여, 300년이라는 시간동안 사회가 발전하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화가가 주목하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변화됨을 볼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소수의 부유한 계층만이 향유하던 초상화, 정물화에서 시작되어 삶이 안정되어감을 보여주는 일상적 풍경들, 그리고 재현의 강박이 버려지는 인상주의, 표현주의 화풍으로의 변화가 흥미로웠다. 단순한 생존, 삶의 문제부터 정신적 영역까지 아우르는 미술의 힘과 역사적 사료로서의 미술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여러모로 탄탄하게 구성된 전시였다.

*위 리뷰는 뮤움에 게재되었습니다. (링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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