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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욱, <지독하게 외로운 날>, 한지에 먹, 140×130cm, 2007 |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버틸 새도 없이 휩쓸려, 어딘가 애매해진 위치에 서버린다. 오른팔에 걸어둔 가방이 자꾸만 바닥을 향해 내려앉았다. 분명히 필요한 것만 넣어가지고 나오는데 그 이상의 것이 담긴 듯 무겁다. 왼손에 든 핸드폰과 이어폰은 뒤엉켜 어지럽고, 이럴 바에야 아예 빼서 넣어버린다. 가방 문을 여느라 고개를 숙이면서 구두 앞코의 까진 자국을 보았다. 조심히 걷지를 않아서 인가, 늘상 앞코가 까져 있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여태 걸어온 습관이 바뀔까 생각한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코 끝을 문지르고 도착역이 얼마나 남았나 세어봤다. 그 사이 누군가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다음역에 내리기 위해 사람들을 밀쳐냈다. 누군가는 인상을 찌푸리고 나는 찌푸린 미간을 익숙한 눈으로 보았다. 대수로울 것은 없었다. 곱게 단장한 누군가가 코트자락을 털어냈고 누군가는 핸드폰 문자를 쓰느라 바빴다. 그 사이사이 누군가는 관심도 없는 광고판을 쳐다보며 음악을 듣는다.
이 안에 수 많은 사람이 훅 하고 입김을 뿜고, 다시 코로 공기를 들여마신다. 우리는 명확하게도, 같은 공기를 공유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온도가 올라간 지하철 안, 열심히 달리던 지하철이 덜컹이고, 사람들이 덜컹인다. 나는 무의식중에 발가락 끝에 힘을 바짝 준다. 중심을 잃지 않고 내 몸을 지탱하기위한 몸에 익은 방법이었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 서서, 다시 한번 덜컹, 그 흔들리는 물결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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