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23, 2013

<금은보화: 한국 전통공예의 미>, 삼성미술관 리움 (2013.3.2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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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보화는 예전 전래동화에서 많이 들어봤음직한 단어이다. 왠지 한 두가지가 아니라 풍성한 보물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사전에서 따로 정확한 뜻을 찾아보니 '금, 은, 옥, 진주 따위의 매우 귀중한 물건'을 지칭한다고 한다. 이번 전시가 금, 은, 옥, 진주 등을 이용한 한국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을 생각하면, 왜 그러한 타이틀이 붙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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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의 화려한 면모를 선보이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고대부터 대한제국기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재료와 최상의 세공력으로 만들어진 공예품들을 전시했다. 전시는 크게 <금은보화: 권위와 화려함을 새기다>, <불법의 빛, 장엄의 미>, <금은보화: 가장 귀한 재료>, <금은보화: 빛으로 그리다> 이렇게 네 가지 섹션으로 나뉘어지며, 각각 조금씩 다른 테마로 구성되어있다. 박물관에서 청동조각이나 소수의 장신구들을 조금씩 접해본 적은 있었어도, 전통공예작품들만을 모아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었는데, 각자 따로 보았던 것을 한 곳에 모아두니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이 더 눈에 도드라진다.
전시장에서는 금속공예작품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금속공예란 철•금•은•동•청동•아연 등 금속을 재료로 다양한 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금속공예품은 사용 목적이나 용도에 따라 실용적인 면이 우선시되었지만, 점차 여러 가지 다채로운 기술과 문양이 첨가되는 공예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금속공예는 제작기법에 따라 주조기법(틀에 부어 형태를 만듬), 판금기법(금속판을 만들어 오리고 잘라붙여만듬)으로 나뉘어지며, 주조나 판금기법으로 만들어진 형태에 표면에 누금세공, 타출, 조금, 입사기법등을 이용하여 표면을 장식한다. 전통금속공예는 시기에 따라 발전한 특정 양식과 기법들이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금은보화: 권위와 화려함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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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작품과 함께 디스플레이된 디지털 시스템. 터치스크린에 작품의 이미지가 있고 이를 확대하거나 축소하면 정면에 위치한 커다란 모니터가 그걸 그대로 보여준다. 원형 작품의 경우 전면만 볼 수 있는 것을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돌려볼 수도 있었는데, 맨 눈으로 보기에 너무 정교해서 보이지 않거나 시야가 닿는 않는 부분까지도 보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실제로 손가락 하나 정도 폭을 가진 장신구들도 이 모니터를 통해서는 몇 백배 이상 확대해 볼 수 있으니, 기술이 감상의 폭을 넓혀주는 혁신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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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섹션에는 금속공예가 매우 활발하였던 고려시대 공예품들이 여러 점 전시돼있다. 그 중에서도 <금제 교구>는 그 화려함과 섬세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작품. 허리띠 장식으로 사용되었던 이 <금제 교구>는 9cm 남짓한 크기의 보물이다. 두드려서 윤곽을 만든 타출기법과 금 알갱이와 금실을 붙인 누금 기법이 특징이며 이 작은 판 위에 어떻게 이걸 다 손으로 만들었을까 싶은 용의 모습이 세공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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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금관은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법한 보물이다. 많이 전시되고 많은 노출이 있었다는 것은 그 만큼 대상이 갖는 가치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인 <서봉총 금관>은 금을 아주 얇게 만들고, 그 편 위에 하나하나 옥을 달고 금을 올린 공예품이다. 세세하게 달린 금 달개들은 약간의 미동에도 빛을 발할 수 있게한 것이며 함께 사용된 옥은 최상품 옥으로 그 빛깔이 아주 수려하다. 금관에서 볼 수 있는 출(出) 형태의 조형은 이 시기만의 특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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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는 신분에 따른 엄격한 복식제도가 유지되어서, 최고 신분자들은 장례 때도 금으로 만든 관이나 각종 장신구들을 치장하고 장례를 치루었다고 한다. 땅 속에 귀인과 함께 잠들어있던 금관과 귀걸이, 허리띠, 팔찌 등은 오랜 시기가 지나 다시 세상에 나오면서, 후손들에게 그 시대 유물의 기품과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도 특히 신라의 고분출토 금공품들이 많은 것은 적석목곽분이라는 묘제로 인해 고분이 거의 도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법의 빛, 장엄의 미> 불교공예품은 통일신라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번창하면서 사찰의 건립이 크게 늘어났고, 이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불교 관계 금속공예품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불법의 빛, 장엄의 미> 섹션에서는 부처의 사리를 담는 사리기를 비롯한 사리장엄구, 부처상 등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불교공예품들이 전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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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수정, 유리, 금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사리기들을 볼 수 있으며, 전체를 감싸는 사리외함 또한 전시되어있다. 사리기 자체는 정말 작은 크기의 것인데, 저 것을 어찌 만들었을까 싶게 정교하게 세공되어있다. 사리란 부처님의 몸에서 나온 뼈나 결정체를 지칭하며,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난 구슬 모양의 유골이다. 부처뿐 아니라 더러는 독실한 신도에게서도 나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처음에는 중국을 통해 들여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여 탑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수효가 부족하여 깨끗한 모래와 수정, 보석류와 같은 광물을 사리로 이용한 대용 사리도 널리 쓰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사리를 담는 것은 사리기라고 하며, 이 사리기를 포함하여 탑 안에 들어가는 전체 형태를 사리장엄구라고 한다. 사리 자체가 매우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금,은,동,유리,수정 등 귀한 재료들로 만들었으며 3겹,4겹,5겹 등으로 포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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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쪽 방에 들어가면 손바닥 크기 정도 될까 싶은 부처들이 금으로 세공되어 있다. 어두운 실내안에 여러개의 부처상이 있었는데 앉아있는 좌상, 서있는 입상 등 다양한 포즈의 부처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취하는 수인을 모두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특유의 부처가 갖는 온화한 표정이 그 앞을 쉽게 떠나지 못하게 했다. 마치 나의 속내가 다 드러나는 듯 부끄럽기도, 모든 욕심이 덧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어도 종교적인 작품 앞에서는 일종의 숭고한 미학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그것을 만든 이의 정성과 경외하는 마음이 그 안에 담겨서일테고, 또 지칭되는 대상 자체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금은보화: 가장 귀한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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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섹션에서는 가장 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귀한 장신구와 생활용품들을 볼 수 있다. 재료가 재료인만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왕족이나 아주 부유한 귀족층이었을 것이다. 실제 전시되는 작품들은 왕과 왕비의 것들이 많다. 온갖 금은보화로 치장된 장신구들을 몸에 두른 왕과 왕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심지어 그들이 사용하는 찻잔이나 술잔 등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들 또한 귀한 소재로 세세하게 세공되어 있는 것을 보니 장인의 솜씨도 놀라울 뿐더러 왕의 위엄이 새삼 느껴졌다. 빛나는 보석들은 감히 저로 하여금 스스로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조선시대 공예품들이 많이 있는데, 조선시대는 유교를 국교로 하고 불교를 억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전 섹션에서의 불교공예품 등을 만나보기는 힘들다. 또한 사치 금제등의 풍조로 인해서 화려한 공예품들의 제작을 억압하다보니 이전 시대에 비해 기술이 급격하게 쇠퇴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럼에도 비녀와 노리개 등 여성용 장신구의 제작은 매우 다양해졌다고. 전시된 작품들은 '여백의 미 조선'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갸우뚱할만큼 화려한 작품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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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비 앞꽂이 및 떨비녀는 옥과 은에 도금을 하고 진주와 유리로 장식한 장신구이다. 가채를비롯한 떨잠, 떨비녀의 무게는 아주 상당한 것이었다고 한다. 떨잠이나 떨비녀라는 명칭은 옥판 위의 떨새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며, 크고 화려한 대삼작노리개는 궁중에서 대례복에 착용하였다. 이 장신구들은 모두 영친왕비의 유품으로, 순종황제와 윤대비를 알현할 때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비였던 영친왕비는 그 인생의 질곡으로 인해 비운의 왕비로 불리우는데, 그녀의 삶과는 상반되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신구들이 인상적이었다. 
<금은보화: 빛으로 그리다><금은보화: 빛으로 그리다>에서는 금은보화를 재료로 한 장신구 뿐 아니라, 회화작품들을 함께 볼 수 있었다. 금을 물감삼아 정성스럽게 그린 <감지금은니 대방광불화엄경>이나, <금니 산수인물영모화첩>을 보고는 그 정교함에 혀가 내둘러졌다. <상감유리구슬>에는 1.5cm남짓한 구슬에 그 안에 새와 사람의 얼굴이 들어가있고, <청동은입사 운룡문 향완>에는 고려시대의 특징인 은입사 기술로 세공한 용이 있는데, 이것들 또한 세밀함이 엄청나다. 앞서 보았던 것들이 장신구들 위주였다면 이 섹션은 회화작품들이 많고, 장신구나 생활용품들에도 귀한 재료를 이용한 그림이 그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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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금은니 대방광불화엄경>은 남색 닥종이에 은으로 글을 쓰고 금으로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이것 역시 고해상도 스크린으로 확대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고해상도 스크린에 확대된 것이 실물크기라도 해도 놀라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세밀함을 자랑한다. 닥종이에 그린다는 것이, 필치가 하나 빗겨가거나 간격이 조금 떨어지거나 해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인데 이를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집중하여 그렸는지 짐작이 간다. 이 작품이 제작될 당시는 원나라 침략기로 한국의 장인을 차출해 가기도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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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고려시대의 보물 중 하나인 <지장도>. 가운데 가장 크게 위치한 것이 지장보살이며, 커다란 신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에 사천왕, 제석천, 범천, 도명화상, 무독귀왕(염라대왕 이라고도 함)이 시립하고 화면의 네 귀퉁이에 다문천, 지국천, 증장천, 광목천 으로 불리는 사천왕이 위치한다. 지장보살의 미소는 온화하고 사천왕은 그 기세가 대단하다. 옷 주름이나 옷의 패턴 하나하나가 비단에 세필 금분으로 그려졌으며, 이러한 정성에서 종교적 염원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를 보고 어두운 공간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니 과거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길지 않아서 부담없는 분량이다. 보통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의 도예작품들을 보면 특유의 단아하고 소담한 맛,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차분함이 특징인데, 이번 금속공예 작품들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이다. 금속공예가 화려하게 꽃 피었던 시기의 작품들만 모아 전시를 해서 그런지, 금속공예의 화려함에 눈이 부셨다. 과거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공예품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워할만 하다. 전시작품들이 지금의 화려하다는 보석들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껴졌던 건, 나의 몸에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가 몸에 베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 베어진 미감이 우리의 것을 알아보고 반응한 것이 아닐까. <금은보화전: 한국 전통공예의 미> 전시에는 우리나라 고유의 기품이 담겨있다. 장인들의 놀라운 세공력, 그리고 그로 인해 빛을 발하는 작품의 숭고한 기운을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전시는 6월 2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이어지며 입장료는 7000원이다.

*위 리뷰는 뮤움에 게재되었습니다. (링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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