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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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004. 보자기에 쌓여 꿈틀대는 목소리, 그 흔적 더듬기


1. 목소리의 단순한 듯 넓은 의미
목소리란 기본적으로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를 지칭하며, ‘의견이나 주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의미로 사용 되기도 한다. 중・저음의 목소리라고 하면, 앞서 말한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를 말하는 것일 테고, 특정사건을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목소리라 하면 이후 ‘의견이나 주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목소리’를 뜻하게 된다. 우리는 목소리라는 단어를 청각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로도 높은 비중을 가지고 사용하고 있다.
카페의 마감시간에 들리는 안내방송소리. 경쾌한 배경음악이 함께 하는 그 방송에는 애교에 능한 여배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쉽지만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간드러지게 굴러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우리는 마감을 해야 하니 어서 나가달라’는 종업원의 마음을 대신해 준다. 이 방송은 사람이 많을 때에는 좀 더 이른 시간에 아주 크게, 그리고 사람이 적을 때에는 좀 더 늦고 낮게 방송된다. 안내방송이라는 것이 애초에 동일한 볼륨으로 녹음된 것이지만, 그것이 들리는 소리나 시점이 달라지며 그 안에 담기는 ‘목소리-의도-‘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목소리란 이러한 방식으로 청각적인 형태의 것을 기본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의견이나 발언 등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단순한 듯 하면서도 넓은 의미를 갖는 것이 바로 이 목소리이다. 내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음을 ‘기분이 좋지 않다’고 소리 내어 말할 수도 있지만 다른 방식을 취하여 표현할 수도 있다. 글이나 음악으로, 혹은 그림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형식이 어찌되었던간에-그것이 꼭 청각적 형태를 입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속에 담긴 함의를 발언자의 ‘목소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2. 말(목소리) vs 글쓰기(문자) – 플라톤에서 지젝까지
플라톤(Plato)은 글쓰기보다는 ‘말(목소리)’이 중요하다고 하며, 글쓰기를 비판하였다. 그에 따르면 말이라는 것은 억양, 강세, 발언의 상황을 통해 스스로를 해석하지만, 글은 이해를 위한 도구들이 부재하므로 무력한 것이라고 보았다[1]. 후에 데리다는 ‘글쓰기’보다 ‘말’을 더 진실한 것으로 간주하는 음성중심주의[2]를 비판하며, 말이 글쓰기의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님을 피력했으며, 자크 라캉(Jacques Lacan )은 이를 다시금 비판한다. 그는 목청에 담긴 목소리뿐만 아니라 제스처도 목소리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였으며, 라캉의 뒤를 잇는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은 말 보다 말에 숨어 있는 목소리, 청각적인 요소를 배제한 제스처나 억양 등이 더욱 더 강력한 언어라고 말한 바 있다.
지젝은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3]를 예로 들며 목소리 외의 요소들이 얼마나 언어 전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가를 설명했다. <위대한 독재자>에서 주인공 이발사는 일련의 해프닝으로 인해 독재자 힌켈(찰리 채플린 1인 2역)과 역할이 바뀌게 된다. 이발사는 힌켈과 똑같은 말투와 표정, 목소리, 억양으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호소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설에 관객들은 환호한다. 그만큼 언어 자체보다 언어 외적의 요소가 전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또한 뭉크의 <절규>를 보며 그 안에 숨어있는 목소리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분명히 그림은 시각적으로 보는 것이고, 회화가 청각적인 요소를 가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절규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화면을 구성하는 색채나 분위기가 그 상황을 상상하게 하며 그 상상이 소리 까지도 끌어오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청각적인 요소를 배제한 것이 더욱 강력한 언어’라는 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하고 있다.
3. <ACTS OF VOICING>
현재 토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ACTS OF VOICING>은 철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어 왔던 ‘목소리’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ACTS OF VOICING>은 토탈미술관의 신보슬 큐레이터와 독일의 큐레이터 Hans D. Christ, Iris Dressler, Christine Peters가 협업하여 큐레이팅한 전시로서 3년의 기간을 거쳐 기획되었다. 큐레이터들은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흔히 아는 목소리, 목소리 너머의 목소리, 숨겨진 목소리를 전시장 곳곳에 구현했으며, 이 작품들로 하여금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3-1. 목소리의 철학/사색적 의미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에 대한 코멘트 - 슬라보예 지젝

전시는 자크 라캉과 슬라보예 지젝의 자료부터 시작한다. 앞서 살펴본 목소리의 담론들이 강연기록물의 형태로 전시되어있다. 함께 비치된 아카이빙 자료는 자크 라캉과 슬라보예 지젝 외에도 중요 이론가들의 발언을 담고 있는데, 이 자료들을 통해 목소리를 둘러싼 철학적 담론들을 살펴볼 수 있다. 실제 전시를 만들며 참고했던 자료들이라고. 이렇게 운 띄워진 목소리의 철학적 의미는 여러 전시 작품들을 지나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 )로 이어진다. 그는 <식물에게 알파벳 가르치기>라는 작업을 통해 ‘정말로 식물에게 알파벳을 가르친다’. 구조주의 이론가로서 언어가 인공적인 기호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존 발데사리는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용을 강요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언어의 유효성, 언어와 예술과의 관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라사 토도시에비치(Raša Todosijević )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에서 정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다그치듯 물으며 여성의 얼굴을 흔들어 대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의 침묵은 부정의 목소리처럼 보이며 남성의 목소리와 제스처는 불편해지기만 한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정말 예술이란 무엇인가?
3-2. 목소리의 수행적 의미

NOT I - 사무엘 베케트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가 <NOT I> 작품을 통해, 입술과 치아,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만을 가지고 신체와 분리된 목소리를 보여준다면, 라이너 가날(Rainer Ganahl)은 석학들의 세미나를 기록한 on going project를 통해, (앞서 언급한 지젝의 이론과 같은 맥락으로) 청각적 목소리가 아닌 다른 방식의 목소리-이를테면 눈빛이나 제스처-의 힘을 보여준다. 포스트 드라마 장르의 선구자인 팀 에첼(Tim Etchells)은 인터넷 사진들을 콜라주하며 입으로 내는 여러 가지 목소리를 담고, 유투브 동영상에서 이름 모를 작가는 <트렌스 젠더 보이스>라는 제목으로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넘나든다. 옥인 콜렉티브는 ‘진술서를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글의 전달력이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전제로, 등장인물 P가 연기지도자의 도움을 받는 과정을 기록했는데, 여기서 연기지도자가 등장인물 P를 가르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똑같은 내용의 진술서를 읽어나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도하는 목소리톤과 제스처에 따라 내용이 다르게 느껴진다. 외적인 변화를 통해 목소리의 수행적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3-3. 목소리의 사회적 의미

연설문 작성자 - 바니 아비디

바니 아비디(Bani Abidi)는 영상이지만 소리가 없는 형태인 ‘플립북’을 인용하여 작업한다. 플립북의 내용은 ‘남의 연설문을 대신 써주던 사람이 은퇴를 하고 설치된 스피커에 본인의 연설을 하지만, 외부로 통한 스피커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사회적으로 그는 목소리(공신력)을 가질 수 있는 지에 대해 질문한다. 후안 마뉴엘 에차바리아(Juan Manuel Echavarria )는 앵무새 두 마리에게 각각 ‘전쟁’과 ‘평화’를 교육시키고 그 두 마리 앵무새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현상을 영상에 담는다. 그러나 앵무새가 그 단어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은 아니기에, 전쟁이든 평화든 ‘사실은 별 다를 것이 없음’을 역설한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전쟁과 평화도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마라 마츄스카(Mara Mattuschka)는 흑과 백으로 페인팅 된 두 명의 주인공을 교차시키며, 이분적으로 사고하는 태도가 명확하고 분명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양젠종(Zhen Zhong Yang)은 5년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성별과 나이를 불문한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나는 죽을 거야’라는 문장을 말하게 하며, 언어의 사회적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3-4. 목소리의 정치/발언적 의미

다양한 도큐멘테이션 자료 - 호세 페레즈 오카나

호세 페레즈 오카나(Jose Perez Ocana) 는 성적소수자들을 위해 발언해 온 작가이다. 전시장에는 그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이 있는데, 그는 국가와 사회에 성적소수자들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하였으며, 퍼포먼스 도중 불에 타 숨지면서 바르셀로나에서 ‘천사’로 기억되게 된 인물이다. 중립을 지키며 발현되는 정치성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임민욱 작가는 인터내셔널가를 흥얼거리는 퍼포머를 통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니엘 가르시아 앙두하르(Daniel Garcia Andujar)는 깃발을 들고 다니며 벌이는 퍼포먼스로 시위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공간 내부에 설치된 깃발과 설치물들은 현장의 생동감과 작가의 위트를 나타낸다. 이네스 도우약(Ines Doujak)은 원단의 이름을 포스터에 담는 작업을 통해 ‘섬유’를 둘러싼 사건들-노동자들의 삶-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시각적으로는 아름다운 작업들이 사실은 아름답지 않은 역사를 내포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4. 목소리의 형태 더듬어 보기
이 프로젝트는 2012년 뷔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 슈트트가르트(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에서의 첫 전시를 시작으로 전세계를 순회하며, 전시가 진행되는 각 지역의 작가들이 추가되는 방식으로 유기적으로 변형된 형태로 진행된다. 2013년 현재는 토탈미술관에서 전시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후 파라/사이트 아트 스페이스 홍콩이 예정되어 있다. 홍콩은 독일, 서울과는 또 다른 형태로 전시될 예정이다.[4] 토탈미술관에서의 전시에서 국내 작가 임민욱과 옥인 콜렉티브의 작품이 추가된 것처럼 약간의 변화와 보완들을 통해 전시가 이어져 가는 형태이다. 이번 전시에는 앞서 소개한 작가들을 포함하여 총 23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목소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시에 참여하였다.
<ACTS OF VOICING>은 목소리라는 꿈틀대는 덩어리에 보자기를 씌워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보자기를 멀리서 보고 누군가는, ‘아,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자기에 쌓인 덩어리구나. 중요한 거니까 쌓아두었겠지.’ 하며 지나칠 테고, 누군가는 호기심에 이를 만져보며 ‘이 안에 들은 건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구나.’ 하며 몸으로 겪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보자기 속의 정체는 지루해 보이기도 하고 때때로 시끄러운 소음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은 우리가 매일 같이 사용하는 바로 그 ‘목소리’이다. 그것을 떠올려 보면 이 보자기 더듬어보기가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보자기 속 목소리가 여전히 꿈틀댄다. 내가 더듬어본 목소리의 흔적은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다. 이 보자기가 만약 당신 앞에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쟁 중에 한 이탈리아 사령관이 참호 속에 있는 중대에게 “병사들이여, 공격하라!” 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는 그 혼란 속에서 모두에게 잘 들리도록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꼼짝하지 않자 화가 난 장교는 더 큰 목소리로 “병사들이여, 공격하라!” 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모든 일은 세 번째에 일어나지요? 그는 다시 한번 더 크게 “병사들이여, 공격하라!”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때 참호에 있던 누군가 아주 작고 감사하는 목소리로 “너무 아름다운 목소리다!” 라고 외쳤습니다. 
-믈라덴 돌라르, <목소리에 불과한>중에서, MIT, Cambridge, Massachusetts 2006, p.3
[1]해석학적 대상의 규정으로의 언어성 (가다머 『진리와 방법』(해제), 2005~2006,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음성중심주의 [音聲中心主義, Phono-centrism]: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1.30, 국학자료원
[3]<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찰린 채플린 감독,주연, 1940 :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토매니아(Tomania)국에 힌켈(Adenoid Hynkel: 찰리 채플린 분)이라는 독재자가 나타나 유태인을 탄압한다. 1차대전 후, 과거 경영하던 이발소를 다시 시작한 유태인(A Jewish Barber)은 유태인 탄압정책에 의해 돌격대원에게 잡히나, 전쟁시 구출해 주었던 슐츠 장교의 도움으로 무사히 풀려난다. 유태인 갑부가 힌켈의 대부 요청을 거절하자, 탄압의 도를 더하던 독재자는 이웃나라인 박테리아국의 독재자 나폴리니와 맺은 불가침조약을 어기고 오스텔리히를 침략한다. 힌켈의 미움을 사 이발사와 함께 수용소로 보내진 슐츠는 군복을 훔쳐 달아난다. 때마침 이발사로 오인된 힌켈이 잡혀 들어가고, 힌켈을 대신하여 연단에 오른 이발사는 목청껏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호소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4] 리플렛 참조.
*<ACTS OF VOICING>은 가나아트센터 근방에 위치한 토탈미술관(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32길 8)에서 열리고 있다. 토탈미술관은 건축가 문신규의 작품으로, ‘좋은 미술관은 작가들이 마음대로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개관 이래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기존의 딱딱한 화이트큐브 미술관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 곳은 매우 색다른 공간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미술관은 전시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휴식하고 음미하는 매력을 선사한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이어지며(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는 성인 5,000 청소년 이하는 3,000원이다. (문의: http://www.totalmuseum.org, 02)379-3994)

 *위 글은 리펠러에 게재되었습니다. (링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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