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빨간색 바가지를 찾아 낮에 따온 봉숭아꽃과 초록잎을 넣었다. 문 앞에서 작은 돌 하나를 줍고, 명반을 넣은 뒤, 바가지 속 내용물을 콩콩 찧었다. 생각보다 오래 공을 들였다. 그리고 나서 랩과 비닐팩을 손가락을 감을만큼 10개씩 잘랐다. 하얀 실도 10개 잘라두었다. 나무젓가락을 톡 잘라 그 붉은 것을 10개로 나누었다. 그 중 하나를 엄지손가락에 올렸다. 턱 없이 많았다. 내 손톱은 그리 크지 않은데, 왜 이리 많이 찧어놓았는지. 어쨌든 여기에 있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열 손가락에 붉은 봉숭아-언뜻보면 김치같아 보이기도 한다-을 올렸고, 랩을 감았고 비닐팩 조각을 감았고 실을 감아 칭칭 동여맸다.
여름이면 항상 이 곳에 와서 봉숭아물을 들였다. 언제부터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여름에는 봉숭아물을 들였고 시간이 갈수록 자라나는 손톱이 아쉬웠고, 해마다 내심 첫눈 때까지를 기다렸다. '첫눈 올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대.' 그런 간지러운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나의 첫사랑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 존재하기는 했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오랫동안 봉숭아 물이 남아있으면 가슴이 조금 설레이고는 했다.
열 손가락을 칭칭 동여매고 잠이 드는 밤은 늘 두근 거렸다. 열 손가락 다 물이 잘 들까, 색이 흐리지는 않을까, 자다가 실이 풀어지지는 않을까. 그러한 쟁쟁거리는 걱정과 내일 아침의 기대감이 뒤섞였다. 그리고는 꼭 간밤에는 실을 풀어보고 흐릿한 색에 실망하는 꿈을 꾸었다. 정 색이 흐리면 위에 다시 한번 들이면 되는 것이었으나, 반드시 한 번만 들여야 한다는 법칙을 가지고 있었다. 두번에 완성되면 그건 봉숭아 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지난 밤에는 봉숭아와 관련된 꿈을 꾸지 않았다. 두근거림은 여전했는데, 불안감이 줄어든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오늘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이불도 개켜놓지 않은 채, 안쪽 방으로 건너왔다. 사각티슈 한장을 깔고 가위를 가져와 하얀실을 하나하나 끊었다. 그리고 비닐을 풀고, 랩을 벗겨냈다-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이다-. 열 손가락을 확인한다. 늘 그렇듯이 걱정할 필요도 없이 예쁜 주황빛이 들었다. 손끝부터 손가락 중간 쯤까지 점차 흐릿해지는 주황빛. 어쩌면 메니큐어보다 봉숭아물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손톱에만 자로 잰듯 색을 입히는 메니큐어. 그건 왠지 너무도 확실해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가끔씩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것을 토대로 희망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의 예로는, 분홍빛의 노을 사이로 핀 무지개를 보았을 때, 작년에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의) 옆집 텃밭가에서 몰래 데려다 심은 도라지꽃을 다시 만났을 때, 잘 자란 방울 토마토를 따서 바구니에 담을 때, 작은 엄마가 해준 수박주스가 너무 맛있을 때, 뭐 그런 것들. 오늘은 손톱에 들인 봉숭아 물이 아침부터 나를 희망에 차게 만들었다. 대략 9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건 지속되고 있다. 희망적인 정서를 품고 사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순간에는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되어, 의도하지 않은 웃음을 짓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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