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20, 2010

딱 쿵 하고 부딪힌 어깨

1
 차가운 아메리카노. 파란색 빨대를 습관처럼 잘근잘근 물다가 한 모금 쓱 하고 빨아들인다. 입속 가득히 커피물을 담아두고 잠시동안 혀의 감각을 모두 동원하여 씁씁한 만족감을 음미한다.

2
 외부세계와 나를 차단한 이 청각적인 요소는 나의 세계를 아주 빠르게 장악하였다. 나는 순간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굉장히 쉽게 장악당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하여서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저항할 이유 따위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모든것을 떠나서 장악되어지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3
 화장실에서 나와 모퉁이를 돌면서 그 짧은 찰나에도 나는 팔을 휘적휘적 거리며 굉장히 씩씩한 걸음걸이를 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리 했던 덕분에 벽 모서리에 쿵 하고 오른쪽 어깨뼈를 박았다. 쿵 소리는 아닌척 하면서 퍼져나가 10m반경 안에 앉아있던 권씨에게 전달되었다. 내가 자리에 앉아 나 방금 나오다가 여기 박았어 하며 오른쪽 어깨를 매만졌더니 그 소리가 너였냐며, 권씨는 늘 웃던 그 모냥으로 막 웃었다. 옷을 걷어 어깨뼈의 데미지 정도를 확인하여 보았더니 붉으스름 한게 딱 쿵 하고 부딪힌 어깨 였다. 
 몇분 후,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다가 아무 생각없이 주르륵 하고 커피를 쏟았다. (주르륵 할 정도의 양이 었다.) 옷에 묻은 커피를 휴지로 닦으면서 오늘은 좀 재밌는 날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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