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5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곰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p142
"너 또 길 잃은 고아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그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운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 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 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내가 스스로 정리할 수 없었던 느낌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녀가 기꺼이 내 세계로 들어와 나 대신 그것을 객관화해주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강렬한[그리고 어쩌면 균형이 잡히지 않은] 사랑을 느꼈다. 고아에게 고아라고 일깨워줌으로써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 었다.
p191
설사 우리가 아름답고 부유하다고 해도,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랑받고 싶어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서 그것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내 얼굴보다는 머리를 칭찬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꼭 얼굴을 칭찬해야겠다면, [정적이고 피부조직에 기초를 둔] 코보다는 [운동신경과 근육이 통제하는] 미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주기 바란다.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리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테 약해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p218
우리가 비록 계속 손을 잡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클로이와 내가 우리 몸이 서로에게 점점 낯설어지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임을 알았다. 둘 사이에 벽이 세워지고, 헤어짐은 제도화되겠지. 몇 달, 몇 년이 지난 뒤에야 한번 만나게 되겠지. 가볍고 즐거운 표정으로, 가면을 쓰고, 정장 차림으로. 레스토랑에서 샐러드를 주문하겠지. 우리가 오직 지금만 드러낼 수 있는 것, 순전한 인간적 드라마, 벌거벗은 모습, 의존 상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실은 입 밖에 내지도 못할 거야. 마치 가슴을 찢는 듯한 연극을 보고 나왔지만 안에서 느낀 감정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술이나 한잔 하러 술집으로 가는 관객들, 그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는 관객들 같겠지. 괴롭기는 했지만 나는 이 순간이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보다는, 혼자 과거를 되풀이하고, 나 자신과 그녀를 비난하고, 미래를 구축하려고 애를 쓰고, 자신의 등장인물들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깨끗한 결말을 위해서 다 죽여버리는 것 외에……] 혼란에 빠진 극작가처럼 대안이 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애를 쓸 순간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p255
세상이 내 기분에 따라서 표정을 바꾸어주기를 기대할수는 없었다. 거리를 이루는 거대한 돌덩이들이 내 사랑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세상은 내 행복에 기꺼이 편의를 제공했지만, 이제 클로이가 떠났다고 해서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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