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3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나서, 입의 근육이 미처 자유롭게 움직여지지 않을 때와 같은 말투다. 하지만 그건 일부러 능청을 떠는 것뿐이고, 늘 그렇듯이 실제로는 온몸 구석구석까지 완전히 깨어 있다.
p27
세계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는데도, 너를 받아줄 공간은-그건 아주 조그만 공간이면 되는데-어디에도 없다. 네가 목소리를 구할 때 거기 있는 것은 깊은 침묵이다. …그런 장마 광경을 뉴스 같은 데서 볼 때마다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지, 꼭 그대로다, 그게 바로 내 마음과 같은거야, 하고.
p251
눈을 감고 그대로 자려고 하지만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몸은 강하게 잠을 원하고 있는데, 정신은 차갑게 깨어 있다.
p268
나는 침대 위에 드러누워 헤드폰으로 프린스의 음악을 듣는다. 그 기묘하게 쉼표가 없이 계속되는 음악에 의식을 집중한다. 첫 번째 배터리가 <리틀 레드 코르벳> 도중에 끊어진다. 음악은 물에 쓸려 흐르는 모래 속에 삼켜져버리듯 그대로 사라지고 만다. 헤드폰을 벗어놓자 침묵이 들린다. 침묵이란 귀에 들리는 것이다. 나는 그 이치를 안다.
p351
아픔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어서, 그 뒤에는 개별적인 상처 자국이 남아.
p389
그 말을 일단 입 밖에 내버리자, 새삼스럽게 형태가 있는 말로 만들어버리자, 내 마음속에 커다란 공동이 생긴 것 같은 허전한 감각이 생겨난다. 그 가공의 공동 속에서, 내 심장은 금속적이고 공허한 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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