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4
오늘, 이렇게 흐린 날, 나는 좀 지쳐 있고, 비가 올 듯하면서 오지 않고, 마음에는 무거운 돌이 하나 내려앉은 것 같아. 어쩌면 영원히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p70
새벽이다. 우리는 오래 전에 말을 잃었다. 이런 곳에서, 이런 기분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에이와 나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소한 화제를 입에 올리기에 이 공기는 지나치게 단단하다. 농담이나 주고받을 만큼 말랑말랑한 공기가 아닌 것이다.
…
나는 몸을 빼내는 대신, 얼굴을 조금 든다. 에이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는다. 이런 키스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만약 이 세상 어딘가에 완벽한 사랑이 있고, 그 완벽한 사랑이 나를 끌어안아 입을 맞춘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그러나 그 완벽한 사랑과 키스하는 순간, 이 세계는 끝난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찢어진다. 파멸한다.
나는 에이의 품에 안기어, 세계의 끝에서 울리는 그 목소리를 듣는다.
p95
나는 간절하게 위로를 받고 싶어.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마음속에 떠 있는 별 하나를 상상해. 별이 있는 동안에는, 적어도 세상에 휘몰아 치는 바람을 피할 수가 있어. 그 별은 가끔 캄캄한 구름속에 잠겨 보이지 않아. 그런 밤이면 나는 울고 싶어져. 기껏해야 별 하나인데, 그것만 있으면 그래도 용기를 내어 살아갈 수 있는데, 세상은 그것마저 빼앗아가려고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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