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 2011

에쿠니 가오리, <홀리가든>


p25
 정말 멀리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정말 외톨이라 생각하고, 그래도 세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가호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세수는 해야 하고, 아무리 그대도 이는 닦아야 하고, 아무리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 한다.


p123
 쓰쿠이는 절대 가호의 방에서 묵지 않았다. 헤어질 때면 가호는 늘 자는 척했다. 벨트를 매는 소리가 들리고ㅡ지금도 가호는,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리였다고 생각한다ㅡ스쿠이는 가호의 눈두덩에 부드럽고 가벼운 키스를 남기고 방을 나갔다. 언제나 규칙적으로, 잘 자라고 말하는 쓰쿠이의 목소리가 정말이지 늘 허망하게 울렸다.
 5년동안, 몇 번이나 똑같은 일을 되풀이 했을까. 그때마다 가호는 시트에서 팔을 내밀어 예쁘게 매니큐어를 칠한 손톰을 보면서, 어른이니까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니까 어른이니까 어른이니까. 쓰쿠이와 헤어진 지금도 역시 그렇다. 손톱을 보는 것은 사회적이기 위한 주문을 외는 것이다. 어른이니까 어른이니까 어른이니까.

 
p193
 뜨거운 샤워는 늘 가호 편이다. 무슨 일이 있었어도, 어떤 장소에서도 뜨거운 샤워만 있으면 헤쳐 나갈 수 있다. 타인의 말과 손톱자국은 샤워를 하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다. 하나도 남김없이 흐르는 물에 씻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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