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피곤이 나를 뒤덮어, 온몸이 물먹은 솜 마냥 무거웠다. 씻고, 렌즈도 끼지 않고 안경을 꼈다. 옷을 갈아입고, 로션을 바르고, 현미를 한 컵 갈아 마신 뒤, 집을 나섰다. 바람이 한결 서늘했다. 지하철 시간을 놓칠까 종종거리고, 그러다, 또, 뛰었다. 뛸 때마다 생각한다. 5분만 일찍 일어날걸. 이 생각은 어찌된 것이 매일이 변함이 없다. 그만큼 아침의 5분은 내게 이겨내기 힘든 것이다. 아침잠이 없이 바지런한 사람이 나는 너무도 신기하다.
2
무기력한 아침. 무기력이 지속되는 사무실. 요즘은 이렇다 할 일이 없어 한가한 편이다. 덕분에 나는 흐물흐물 밀려오는 뜻 모를 불안과 혼란에 휩싸이고, 호르몬을 탓한다. 그 놈의 호르몬. 한 달의 절반을 심리적으로 흔들거리게 하는, 내가 나를 못 견디게 하는, 이 호르몬 과잉의 상태.
3
수없이 나에 대해 생각한다.
권태로움과 이 감정의 기복과 나의 오만함과 우울의 밑바닥. 나의 주변사람들과 나의 욕심과 나의 강박. 내가 끝내 지고가야 할 삶의 무게들. 모든 것들은 뒤엉켜 결론을 짓지 못하고 스스로가 ‘지겹다’라고 말하게 한다. 나의 민트색 운동화를 한번 바라본다. 창밖이 여전히 흐리다. 흐린 날은 맑은 날 보다 단어가 많다. 다시 또 머리가 엉키기 시작한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선희의 노래를 들었다. 반쯤 잠든 상태에서 울컥. 오랜만에 걷게 된 골목에서 오래된 떡볶이집이 헐린 것을 본다. 새로운 것이 생기고 아닌 것이 사라진다. 순환. 이러다 모든 게 다 같아질 것 이다. 나는 붕 뜬 몸뚱아리와 현기증에 아찔한 머리를 다잡고 집에 돌아왔다. 이런 날이 늘 그렇듯, 옷도 채 갈아입지 않은 채 털썩 앉아 몇 분을 멍하니 보냈다. 더 몸을 놀리기 어렵기 전에 가까스로 옷을 갈아입고, 대략의 저녁을 먹는다.
4
제법 커다란 머그잔을 꺼내 티백을 우리고 오랜만에 상실의 시대를 읽기 시작했다. 헌 책의 누런 종이, 옛 글자들, 어투들. 몇 페이지 만에 또 한 번 울컥 하고 말았다. 예민함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몇 페이지 만에 책장을 덮는다.
5
호르몬 과잉의 날들을, 나는 견딜 수 없다. 그러나 결국은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떠밀리듯,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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