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9, 2012

요즘 라울이의 핫플레이스는 내 방 옷장 위. 기어코 올라가 모든 먼지를 머금으며 왔다갔다 왔다갔다 한다. 거기서 천장에 붙은 모기한테 대고 야옹야옹 겁을 주거나, 옷장 문 여는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아님 뭘 숨겨둔 것마냥 그 속에서 뭔가를 킁킁 거리고 찾는다. 당연히, 잠도 잔다. 학부 때 작업했던 그림이 옷장위에 올려져 있는데 그곳에서 아침잠, 낮잠, 밤잠, 새벽잠을 잔다. 그게 가장 판판하기도 할테고 표면이 종이로 돼 있어 은근히 보온도 될 터이다. 옷장위에 올려둔 후 한번도 손 탄적 없는 심심한 그림은 이제 라울이의 침대로 전향. 나중에 라울이가 옷장 위가 질리고 재미없어져서 더 이상 옷장 위를 찾지 않으면, 그때쯤되면, 그 그림 내가 한 번 꺼내보게 되려나.

졸업하면서 학교에 참 많은 그림을 '찢어서'버리고 왔다. 둘 데도 마땅찮았고 소위 일기장작업을 이제는 그만 하자는 나름의 다짐이었다. 그럼에도 아끼고 애착가는 그림들을 어찌어찌 집에 챙겨가지고 왔는데, 포장된 상태 그대로, 아주 조용히 서랍 위, 옷장 위, 침대 뒤로 들어갔다. 가끔 그것들에 눈길이 닿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래, 내가 참 온 마음 쏟아 저걸 만들었었다.

종종, 이제 작업은 안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내가 그림을 그렸었으니 당연히 작업=그림 이다. 그럼 나는 으레 또 언젠가는 하겠지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고는 그림만 작업에 범주에 넣고 이야기 하기는 싫어 그 뒤에 사족을 붙인다. 누구나 작업이라는 개념에 대한 견해가 다를테지만 나에게 있어 작업은 일종의 '말하기'이다. 그 형태가 그림이든 사진이든 설치든 글이든 퍼포먼스든 기획이든 상관없다. 내게는 그것이 다 같은 맥락이다. 그저 무엇인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건네고, 그럼으로 당신과 내가 함께 느끼게 된다면 좋겠다. 그런게 하고 싶다. 그래서 말인데, 예술이라는 말은 왠지 부끄럽고, 나는 그저 매일 매일의 삶이 작업이 되면 좋겠다.

현재 나는 새로운 일터로 일이 아닌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다. 일이 정말 일이 되면 사람이 참 지루해지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오만하게 혹은 거창하게 들려질지도 모르나, 온 마음 쏟아 그림 그리듯 온 마음 쏟아 무언가 할 수 있는 공간을 진심으로 찾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 좋은 곳이 있다면, 저에게 귀띔을 좀. 모호한 글에도 마음이 조금이라도 끌리신다면, <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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