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29, 2012

고양창작스튜디오 2012 입·출신 작가 기획전, <이미지의 역습>, 고양창작스튜디오 (2012.8.1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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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후, 전시 관람을 위해 고양창작스튜디오로 향했다. 어찌어찌 차를 타고 가는데, 왠 날씨가 이리 변덕인지 비가 마구 퍼붓다가 태양이 눈부시게 밝았다가 참 정신이 없었다. 서울에서부터 고양창작스튜디오까지는 약 5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경우 (강남지역 기준) 넉넉히 2시간 정도가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꽤 빠른 시간이다.
좁은 길들을 지나 비로소 마주한 고양창작스튜디오. 도착했을 때는 날이 맑게 개어있었다. 주변엔 나무들이 푸르르고 어디 하나 큰 소리 나는 법이 없다. 복잡했던 서울을 생각하니 쉬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마당을 쓸고 계시던 아저씨가 전시 보러 왔냐고 내게 물으시고는 로비로 들어 와 오른손으로 손짓을 하시며, “요-쪽하고 저쪽 안에 까지만 전시하는 거니까 그거 보므는 돼요. 응” 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셨다. 아저씨가 나가신 후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오바마 대통령이 내게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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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창작스튜디오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이미지의 역습>展. 국립창작스튜디오 입·출신 작가들인 유영운, 위영일, 박승예, 박성연, 이세경, 하태범 작가가 참여하며, 대중에게 시각적으로 익숙한 이미지들을 원래의 문맥으로부터 이탈시켜 새로운 미적 이미지로 재창조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내가 처음 만난 작품은 유영은 작가의 <오바마>이다. 멀리서 보고 표면에 광택이 있길래 ‘조각을 하고 코팅을 한건가?’ 했는데 가까이 보니 놀랍게도 하나하나 잡지와 전단지의 조각들로 작품이 이루어져 있었다. 종이접기 하듯 접혀져 연결된 부분들이 있고 잘려진 조각들을 이어붙힌 부분들이 있다. 채색된 종이가 아니라 실제 잡지와 전단지를 이용한 것. 뒷모습이 어떤가 돌아봤더니 착실하게도 잡지 조각들이 돌돌 말아져 오바마의 머리카락을 표현하고 있었다. 작가의 수고로움에 절로 경이가 표해지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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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은 작가는 매스 미디어가 대상의 이미지를 만든다-심지어 조작까지도 가능한-는 무형의 사실을 실재의 물리적 공간 안으로 끌고 들어와, 인쇄매체들을 이용하여 그것을 시각화하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가가 하고많은 재료들 중에 잡지와 전단지를 작품의 매체로 사용한 것은 그와 같은 인쇄매체가 매스 미디어의 면면을 대변하는 물질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인쇄 매체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우리에게 특정한 이미지들을 주입시키고 있는데, 유영운 작가는 ‘이렇게 주입받은 것에 따른 감성과 인식을 비판하는 것’에서부터 작품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시대의 영웅들은 어떻게 영웅이 될 수 있었는가? 매스 미디어가 없었다면 영웅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유영은 작가의 작품은 우리시대의 영웅들을 대상화한 것이 많다. 오바마대통령 외에도 배드맨, 미디어의 눈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인쇄매체들을 유의 깊게 보면서 우리 삶에서 미디어가 만들어내고 있는 또 다른 이미지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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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위영일 작가의 <Complexman Ero16>. Complexman은 온갖 영웅의 모습이 짬뽕되어있는, 그야말로 '짬뽕맨' 이다. 배트맨의 머리, 원더우먼의 입술과 하의, 슈퍼맨의 망토, 헐크의 몸통, 스파이더맨의 팔과 손, 아이언맨의 다리. 각 영웅들의 장점들을 모아 만들어진 이 영웅은 그야말로 참 요상스러운 모습을 하고있다. 이 짬뽕맨의 능력치가 얼마나 대단할런지는 모르지만 일단 생긴걸 보자마자 웃음이 난다. 과도한 욕망이 만들어낸 이 결과물은 위영일 작가가 만든 가상 행성 <Planet wee012 All-Star>에서 살고 있다.

위영일 작가는 인간의 욕망을 주제로 작업을 한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7가지(식욕, 성욕, 장수욕, 권력, 편리성, 기네스, 스피드)로 분류하고 <Planet wee012 All-Star>라는 7각형의 행성에 구조화 시켰다. 굳이 7이라는 숫자에 맞추어 이것들을 분류한 것은 '7'이라는 숫자가 서양에서는 긍정과 행운이지만 동양에서는 '칠거지악'등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7각형은 존재할 수는 있으나 존재의 필요가 없는 '과도한 욕망'과 같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선택된 것. 작품 <Planet wee012 All-Star>를 구석구석 살펴보면 이러한 과도한 욕망들이 상징적인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을 보고 있자니 문득 여자연예인의 가장 예쁜 부분만을 모아 합성시켜두었던 인터넷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이미지 역시 인간의-좁게 말하면 여성의-과도한 욕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 였는데, 그 때 무언가 뒤틀리고 어색한 느낌을 받았었던 것처럼, 위영일 작가의 작품을 바라볼 때도 (우습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용한가를 보여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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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내부에 있는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 가면 박성연 작가의 아이보리색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위의 설치물은 <조용한 말>이라는 제목을 가진 샹들리에. 이것은 작가가 머물던 곳에 있던 것인데, 이 대상을 마주함으로써 작가는 그 때의 그 공간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샹들리에가 작가에게는 이를테면 기억의 매개물이 된 셈이다. 누구에게나 바라보고 있으면 이전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대상물이 있다. 이를테면 선물 받은 손목시계라든지 책 한권이라든지. 기억이 깃든 대상물들은 그대로 정지하여 아무런 말도 전하지 않지만, 이미 그 존재만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건네고는 한다. 나에게도 그러한 대상물이 있는데, 작품의 제목인 <조용한 말>은 아무래도 그러한 것에서 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한 말> 작품 옆에는 <2.9x3.6m>라는 설치물이 하나 더 있다. 제목처럼 실제로 이 공간은 2.9x3.6m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는 대만의 평범한 일반인인 Lisa와 대화를 나눈 후 그녀의 설명에 본인의 상상력을 더하여 이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독립공간없이 공동생활을 하는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그 때 그 공간에서 느꼈던 물리적, 사회적 제약을 작가가 작업을 통해 상쇄시켜 준 듯 했다. 이 공간엔 벽도 없고 가구들은 안팎이 바뀌어 있고 보드랍고 따스한 뜨개질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겨울에 코트를 벗으면 따듯한 사람의 흔적이 남듯, 뜨개질을 통해 공간을 만들면서 제약이 없고 부드러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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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박성연 작가처럼 작품에서 섬세한 여성성이 돋보였던 이세경 작가의 <Hair on Tiles>. 타일 위에 그려진 그림들은 뭔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고, 게다가 유리진열장에서 곱게 조명을 받고 있어 그런지, 얼핏 오래된 서양 도자기 유물들을 관람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런데 혹시 작품의 제목을 눈여겨 읽었는가? 눈치 챘을지 모르지만 이 작품은 모두 작가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처음 작품을 보고 캡션 위에 정확히 '타일 위에 염색한 머리카락'이라는 표시가 있어 놀라 작품을 다시 또 들여보고 들여보고 했는데, 매체에 머리카락이라고 분명히 써있음에도, 이것이 진짜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만큼 그림이 실제로 붓으로 그려진 것처럼 정교하다는 것.

오른쪽 작업은 <Hair on the China Set>. 이것 역시 동일하게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는 깨끗히 닦아 차를 담아내는 찻잔이나 접시위에 보통 우리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머리카락을 얹었다. 찻잔 속의 머리카락이나 접시 위에 머리카락을 생각해 보라. 생각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나쁘고 찝찝해진다. 이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것을 혼합하여 작가는 새로운 미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세경 작가는 아무 무늬가 없는 흰 도자기나 타일, 접시 등을 모으고 역사적인 자료에서 차용한 장식패턴이나 문양들을 염색한 머리카락을 붙여 만들어낸다. 이 후 코팅을 하고 유리진열장에 설치를 함으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며 (내가 그랬듯) 도자기 컬렉션 등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지만 알고 보면 지저분한 머리카락으로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 하게 된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이렇게 내가 생각하고 믿었던 사실이 전복되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하고, 또한 아무것도 아니었던 접시와 머리카락이 귀중한 컬렉션이 되어 모셔지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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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범 작가는 이번전시에서 2012년 7월 12일 하루 동안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기사의 헤드라인들을 모아 작업을 했다. 흰 벽에 하얗게 조각된 텍스트들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잘 보고자 다가갔을 때 나타나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허황되고, 그래서 절로 헛웃음이 지어진다. 인터넷 상에서 볼 때에도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는데, 그걸 전시장 벽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더욱 우스웠고 표현력에 입이 벌어졌다. 모두 다른 기자들의 모두 다른 기사였지만 모두 같은 사람이 붙힌 헤드라인 같았고 정말이지 '찌라시' 같은 느낌이었다.
헤드라인이란 말 그대로 기사의 내용을 압축한 머릿제목. 여기엔 본래 추상성을 배제하고 구체성, 그리고 작품에 대한 정보를 담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의 헤드라인이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곧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충격>, <경악> 이라는 글귀를 보지만 막상 기사를 클릭하면 정작 충격적이라거나 경악할 만한 내용을 만나긴 어렵다. 기자들은 클릭수를 늘리면 늘릴수록 그에 대한 수당을 많이 받을 수 있단다. 이쯤이면 수없이 지나가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기는 한다. 물론 용납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과연 기사를 써놓고도 이런 제목을 붙히는(붙힐 수 밖에 없는) 기자들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이렇게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단어의 나열 앞에서 우린 어떻게 정보를 선별하고 취해야 할까? 작가의 말처럼 인터넷 뉴스란 정보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자본을 목적에 두고 움직이는 것, 단지 그 뿐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여섯 명의 작가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박승예 작가의 작품이다. 박승예 작가는 사회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고, 그를 벗어난 금기의 존재들을 괴물로 간주하며, 사실상은 우리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작품에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업 속에는 늘상 어딘가 일그러진 형태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머리에 뿔을 달고 있거나 이상한 곳에 눈이 달려있거나 하여간에 조금은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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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I am your #1>. 트로피 위에 올려진 얼굴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손끝은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붉게 충혈 되어 있고 사팔뜨기를 한 눈은 어딘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트로피라는 것은 본래 '어떠한 행위에 의한 수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사물인데 박승예 작가의 트로피는 '수상을 위한 어떠한 행위'를 보여주는 듯 했다. 인정받기 위한 노력, 스스로가 스스로를 일그러트리고 그것이 고통스러울지언정, 차라리 자신의 모습을 모른척하며 사회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 진짜 괴물은 타인이 아닌 내가 되어 나를 괴롭하고 있었다.

<Need What> 또한 스스로의 내부에 존재하는 괴물성이 여지없이 표출되는 작업이다. 본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갈등. 이렇게 가는 것과 저렇게 가는 것, 이기고자 하는 마음과 질 수 밖에 없는 마음. 그러한 갈등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우리는 잘 알 수 없다. 피가 맺히도록 부딪히고 싸워보지만 정작 그 안에는 승리자도 없고 온전한 패배자도 없다. 작가의 작업에서 보여 지는 이 얼굴들은 사실 작가 본인의 얼굴이지만 그것은 또한 나의 모습이기도 해서 그림을 보며 묘한 공감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를 본 후 우연히 박승예 작가님을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스튜디오를 방문하였다. 12월에 개인전이 잡혀서 현재 많은 작품들이 스튜디오 안에 있었고 한참 진행 중이었다. 천장이 높고 환한 스튜디오의 한 켠에는 작은 살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니 ‘나가서는 마땅히 식사를 해결할 곳이 없고 그러다보니 살림이 하나둘 늘어갔다며’ 웃음을 지으셨다. 덕분에 따듯한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가 있었다.
박승예 작가님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라 스무 살에, 뉴욕에 갔고, 그곳에서 10년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처음 한국에 돌아와서는 너무도 다른 사고방식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문을 걸어 잠그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작가님의 말에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혼란함에는 아무래도 한국사회 특유의 억압과 눈치보기, 사회의 규정된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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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에는 대개 많은 부분에서 <한국 사회 도처에 깔려있는 두려움>이 주제로 올라왔다. 그건 실패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실패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징후들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 안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한 애씀은 자아의 괴물성을 밖으로 노출시키게 되고, 작가님의 그러한 견해는 작업에서도 많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박승예 작가님과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작가님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기운처럼 거리낌이 없고 시원시원하기도, 반면에 야무지고 섬세  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고 자체가 굉장히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에 말씀을 잘하셔서 그런지 작품에서 느끼는 것 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12월에 열리게 될 개인전이 너무도 기대되는 작가.

<이미지의 역습>전은 말 그대로 ‘이미지의 역습’을 볼 수 있는 전시였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이미지, 혹은 대상들이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질서와 통념들을 비판하고 섰던 것이다. 처음 봤을 땐 귀엽거나 재밌게 표현된 작품들이 알고 보면 마냥 가볍지 않았고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 이미 그러리라 믿었던 것들이 전복되는 그 순간들을 통해서-역습당하는 그 순간들을 통해서-감각은 환기되고 사고는 전환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전시는 9월 14일까지 고양창작스튜디오에서 계속 되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위 리뷰는 뮤움에 게재되었습니다. (링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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