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박물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쇼케이스 세 개가 나란히 줄을 맞추어 서 있다. 이 작품은 황지현 작가의 <The most precious thing>. 유리 안에는 파레트에서 막 떼어낸 듯한 물감의 흔적들이 서로 엉겨붙어 하나의 조형물을 이루고 있다. 작가가 직접 언급한 바는 없으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 황지현은 여러갈래의 길을 두루 모색해온 것으로 보인다. 주로 회화작업을 해왔던 평소의 태도로 보았을 때, 작업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터. 그러나 머뭇거리지 않고 손 닿는 곳에서 부터 시작한 성실함이 무엇보다도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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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
이번전시는 주로 회화작업이 아닌 설치작업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영락없이 모든 것이 회화에서 나온다. 전시장 중앙에 벽면에 설치된 <끝나지 않은 길>에는 작품의 끝부분부터 시작하여 일정하게 밖으로 향한 설치 드로잉이 있다. 캔버스를 벗어난 그녀의 그림은 벽을 타고 흐른다. 그렇게 그녀는 캔버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며 공간을 확장시키고, 본인의 세계를 확장 시켜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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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_The most precious thing_가변크기_Mixed media_2012 |
앞서 언급했던 <The most precious thing> 같은 경우, 조형물은 물감덩어리를 매체로 하여 만들어졌다. 뻗어나가는 듯, 솟아오르는 듯 뭉쳐진 것들은 작가 본인이 작업을 해왔던 여태까지의 시간과, 노력의 시각화로 해석된다. 그렇기에 타이틀 대로 귀중한 것이며, 보존할 만한 기념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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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_Artist's concern_가변크기_비닐파일 속 종이파레트_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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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_Artist drawing_29x24cm_종이파레트 위 물감_2012 |
<Artist's concern> 또한 동일한 물감덩어리로 작업된 작품이다. 물감들이 하나의 글자를 이루고 포트폴리오 패키지 속에 담겨있다. 매달려 있는 이 패키지들은 수많은 공모전을 향한 두드림으로써, 여태까지의 시도 속, 작가의 고민의 표현이다.
이 외에 여러 소품 작업들도 물감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인의 지금까지의 작업, 그리고 다시 나아가야 할 방향들, 시도들이 느껴진다. 어찌보면 작업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파레트에 붙어있던 물감들은 작가 본인이 이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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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_실업자_50x31cm_종이,나무,아크릴_2012 |
어느 날 누군가 에게 작가는 '실업자'라는 말을 듣는다. 이에 작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의 단어를 매일을 노력했던 흔적으로> 채웠다. 실제로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였던 다이어리의 표면으로 <실업자>라는 나무 조각은 덮여진다. 그 말의 본질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그녀의 작업, 혹은 예술가라는 직업에 대하여 어떠한 제스쳐를 취하든, 그녀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끝나지 않은 길>이라는 작업이 보여주듯, 그녀는 이제 막 한 걸음 더 나아갔고 길은 무한히 뻗어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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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_고맙고도 미안한_가변크기_화분 속 지지대,종이,철사_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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