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7, 2013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강요배, <등천>, Acrylic on canvas, 91x72.7cm, 2012

열 아홉의 소녀는 밤하늘 보는 일을 즐겨하였다. 그 일은 골목 어귀, 남의 빌라 앞 벽돌가에 털썩 앉은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으니 하늘을 보고, 흰색 구름 낀 짙푸른 밤이 되면 그 구름의 색이 좋아 하늘을 보았다. 별자리 같은건 애초에 몰랐으나 반짝이는 것들이 총총거리면 그것들을 따라 선을 그었다. 공기가 좋지 않다는 서울 밤에도 별은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대신 오래 보아야만 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즈음 자주 보았던 별에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별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이 가는구나, 날이 가는구나를 가늠했다. 

이후엔 가끔씩 그 벽돌 위에 앉았다. 걸어온 길이 힘들지 않아도 숨고르는 기분으로 앉아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고 몇 년이 흘렀다. 작년 겨울은 유난스럽게 추웠고 그래서인지 좋아진 날씨가 감격스러웠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그 벽돌 위에 다시 앉아보았다. 하늘이 흐려서 별은 보이지 앉았지만 대략의 풍경이 같다. 핸드폰 안에 든 노래를 다섯곡인가 듣고서는 음 노래가 좋네. 날씨가 좋네. 그런식의 생각으로 마음을 풀었다. 그 몇년의 사이동안 즐겨듣는 노래가 달라졌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바라는 것들이 달라지고, 그럼에도 욕심만은 여전한 것 중 하나였다. 생각과 태도가 열 아홉의 그 때보다야 자라나긴 했겠거니 하지만, 아직도 어른이라는 말이 낯설다. 나는 종종 그 나이의 소녀들보다 더 감정적인 날들을 보내기도 하고 감각이 날이 갈수록 더 예민해져 풍경을 습관처럼 몸에 담는다.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하는 것들이 줄어들고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더 빠르게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예 지워버린다고. 그래서인지 나의 기억 속에는 그러한 공백이 여럿 있다. 아직은 ‘공백이 그 곳에 있다.’ 라고 인지하는 정도로만, 잊고있다. 아마 몇 년이 또 지나고 나면 공백의 자리도 모두 지워질지 모르겠다. 나의 셈과는 다르게 지워지고 기억되는 것일테니. 그럼 그 때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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