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001. 탄생과 존재의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대식 비극
피에타
김기덕 201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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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에타(Pietà) : 자비를 베푸소서
작년 9월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세간의 화제가 되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엄마(조민수) 미선이 아들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주인공 강도(이정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피붙이의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참으로 비통하고 뒷맛이 씁쓸한 영화였다. <피에타>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각종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고 이제는 많은 이들이 ‘피에타’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상이 되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 포스터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로 우리 눈에 익숙해진 도상이 등장한다. 엄마 미선은 마리아로, 강도는 예수가 되어 그녀의 무릎에 받쳐져 있다. 엄마 미선은 사실상 강도의 친어머니가 아닌 죽은 아들의 어머니였으나 그 둘의 관계는 상징적인 모자관계로 설정되어 포스터 안에 담겨졌다.
이탈리아어인 피에타는 슬픔, 비탄을 뜻한다. 피에타 도상은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떠받치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것을 말하며 이는 성모 마리아의 7가지 슬픔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고 십자가의 길 제13처에 등 예수의 처형과 죽음을 나타내는 주제이기도 하다. 피에타 조각상은 13세기경 독일에서 처음 나타났으며 종교적인 측면 외에도 특유의 비장미와 깊이 감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주제로 널리 퍼져나갔다. 초기 피에타 작품들은 나무 조각이 많았으나 이후에는 회화작품으로도 많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보통은 축 늘어진 예수 그리스도와 슬픔에 잠긴 마리아만을 묘사하지만 작품에 따라 다른 인물들이 추가로 등장하는 구성도 있다.
뢴트겐 피에타/채색목조
높이 88.5cm/1300년경 제작
라인강 주립박물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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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스퍼빌트 :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비탄
피에타의 기원은 13세기 독일의 베스퍼빌트(Vesperbild)로, 수도원에서 저녁기도를 드리기 위해 사용하던 나무조각상을 지칭한다. 베스퍼빌트는 14~15세기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양식이기도 하다. 피에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에서 먼저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이후 알프스 가도를 통해 이탈리아로 전해지면서 ‘피에타’라는 단어로 불려지게 되었다.
초기 베스퍼빌트로 알려진 <뢴트겐 피에타>는 뢴트겐이 수집한 조각품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켈란 젤로의 피에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예수의 몸은 창에 찔리고 못에 박혀 피가 흥건하다. 뚝뚝 떨어져 나오는 피는 계속해서 고이고 있고 이를 어머니인 마리아가 비통한 표정으로 껴안고 있다. 르네상스 이전, 표현주의에 입각하여 제작된 이 조각은 왜곡된 인체비례와 표정으로 인해 비장함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미적인 승화 없이 감정표현에 주력한 작품에서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잃은 어머니 마리아의 슬픔이 더욱 두드러진다.
3. 미켈란젤로 : 고요하게 침잠하는 슬픔
15~16세기로 넘어오면서 격정적 감정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손을 거치며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형상으로 변모했다.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답게 우수한 인체비례와 탁월한 신체의 골격표현을 자랑한다. 이 조각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하나의 대리석에 불과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옷 주름 표현이나 얼굴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이를 가늠해 보았을 때 마리아의 얼굴은 월등히 젊고 그 몸의 크기 또한 더 크다는 아이러니함을 가지지만 이는 안정적인 구성과 미감을 위한 미켈란젤로의 선택이었다고 알려진다. 이 조각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미켈란젤로는 유일하게 직접 서명을 했다고. 정황상 피에타라는 도상은 비통함에 이르는 상황이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마리아의 견딜 수 없는 슬픔은 미켈란젤로의 미감을 입고 고요하게 침잠하고 있다.
4. 이용백 : 탄생과 존재의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대식 비극
16세기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21세기로 오면서 이용백의 사이보그 피에타로 재탄생 된다. 흰색의 거푸집에서 나온 분홍색의 미끈한 몸체가 거푸집에 안겨있다. 특정한 비장미도 표정도 없는 담담한 얼굴. 게다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마리아와 예수의 인상착의도 아니다. 이용백은 바로 이 작품에 ‘자기죽음’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조각을 하면 처음에 흙으로 소조를 한 다음에 거푸집을 뜨죠. 이걸 네거티브 폼이라고 하는데. 이 안의 흙을 거둬내고 다시 포지티브 폼을 떠요. 또 다른 거푸집이죠. 그런 뒤에 이 거푸집을 버리면 그 안에 든 것이 완성본이 되는 겁니다. [피에타]는 완성본이 예수로, 거푸집이 성모 마리아로 된 경우예요.” (네이버 캐스트 인터뷰 중)
처음 소마미술관 전시에서 만나보았던 이 작품은 거대한 크기로 인해 확실히 눈에 띄던 작품이다. 익숙한 포즈, 그래서 단박에 피에타임을 눈치챘으나 그 기묘한 구성에 오래도록 작품 앞에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새로 태어남과 동시에 버려지는-죽음에 이르는-하얀 거푸집에 안긴 새로운 존재라니. 이전까지의 피에타가 어머니 마리아와 죽음에 이른 예수그리스도의 비극을 담아낸 고전적 비극이었다면, 이는 탄생과 존재의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대식 비극이다.
이용백의 피에타는 한번도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려본 적 없는, 타자적 시선에 의해 길들여져 자기응시를 해본 적 없던 스스로를 향한 연민과 비통함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다분히 타자지향적이다. 많은 이들이 나라는 ‘존재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을 거친 나’를 본다.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 또 사랑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새로운 거푸집을 입고 이전의 나를 버린다. 그래서일까? 이용백의 거대한 피에타는 바라보고 있으면 숙연해진다. 작품에서 거푸집은 사이보그인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에게 몰입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러한 자기응시는 이전에 한번도 없었던 일이기에 더 의미 있는 일일지 모른다. 너무 빨리 변화하여 제 모습을 잃어버리고 또 다른 다른 옷을 입는 것.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당신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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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백의 <피에타: 자기죽음> 작품은 현재 사간동에 위치한 학고재 건물 옥상에서 상설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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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백 : 1966년 출생.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 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조각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5년 꽃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 등장하는 ‘엔젤솔져’시리즈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2011년 제 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가작가로 선정되었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알려진 그는 현재 조각, 사진, 비디오, 설치, 회화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
피에타/김기덕-http://pieta.kr
뢴트겐 피에타-http://www.kingsacademy.com
미켈란젤로 피에타-http://openlab.citytech.cuny.edu
피에타/김기덕-http://pieta.kr
뢴트겐 피에타-http://www.kingsacademy.com
미켈란젤로 피에타-http://openlab.citytech.cuny.edu
Photo,Text_이지원(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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