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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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003. 욕망을 뒤덮는 얄팍한 천 조각, 그 우아한 세계


1. 여지없이 드러나는 알맹이
뉴스 정치면을 보면 늘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파문, 논란, 의혹, 확장, 수사… 정치권은 은폐하고자 하고 국민은 알고자 한다. 그에 따라 언론기관은 열심히 기사를 생산해 제공한다. 그들은 사회의 목탁으로서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신장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며,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등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회적 책임을 진다[1].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의 기사를 모두 믿을 수 있을까? 종종 특정 언론사의 기사를 보며 그것의 진위나 의중을 의심할 때가 있다. 어느 때에는 사건 발생 후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특정 언론사보다 네티즌의 정보가 더 투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특정 언론사의 책임에 앞서, 그들의 배후에 있는-보수논객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바로 그 ‘배후세력’-권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라 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왜 은폐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그들이 꾀하는 은폐는 또 뜻대로 잘 되어졌던가. 잘 덮여진 것 같아 보이는 사건들도 언젠가는 여지없이 알맹이가 드러나지 않았었나. 
정보량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편향된 뉴스나 신문 등의 대중매체만이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그래서 무언가 숨기고자 하면 숨길 수가 있었다. 5공화국 시절에는 전두환 지휘 아래 엄격한 보도통제로 5.18 민주화 운동이 ‘북한 간첩이 주동한 폭동’이라고 은폐, 조작되어 알려졌다. 그러나 그 이후 밝혀진 진실은 그것과는 너무 상이하다. 최근 가장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윤창중 스캔들은 우리가 1980년대에 살고 있었다면, 어쩜 모르고 지나갔을 사건이다. 청와대에서 먼저 쉬쉬하고 그에 따라 언론사들이 쉬쉬하면, 그런 사건쯤 그들만이 아는 이야기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특정 권력이 ‘부적절한 사건’을 감추고 숨긴다고 해서 감춰지지만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격려차 엉덩이를 두드렸다’는 것을 어느 누가 믿겠는가. 문자 그대로 ‘격려차 엉덩이를 두드렸다’고 읽을 수는 있겠으나, 아마 이해는 다르게 할 것이다. 그만큼 국민이 감별할 수 있는 인식의 폭은 넓어졌고 그들의 은폐는 얇고 얇은게 되었다.

2. 욕망의 자아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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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리한다 (왼쪽부터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미국), 각 130x97cm, acrylic on canvas, 윤종석, 2012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다섯 개 국가-미국, 영국, 러시아연방, 중국, 프랑스-들의 국기가 위엄 있는 소파 위를 흐른다. 국기는 화려하게 빛나며 수놓아져 있으나 그 껍데기의 무게감은 국가의 상징성보다도 가벼워 그 속에 담긴 것이 그대로 윤곽을 드러낸다. 푹신하고 우아한 장면. 그 주름 사이에 숨겨진 총 한 자루가 서늘하게 미소를 짓는다. 넓은 부엌으로 나가보니 만국기가 뒤덮은 거대한 식탁에 포크와 나이프, 접시가 놓여있다. 캔버스 속 풍경이 이제 막 <식사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테다. 거실에 놓인 크고 안락한 소파 또한 저들처럼 아름다운 세계지도로 덮여있으나, 이 모든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이 숨기고자 하는 것, 은폐하고자 하는 것들을 그대로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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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안에 있다, 160x132cm, acrylic on canvas, 윤종석, 2012

작가 윤종석의 작품에는 정치적 욕망에서 개인적 욕망까지, 욕망의 드넓은 스펙트럼이 나타난다.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어느 지점에서는 극한으로 드러나는 것. 그러한 욕망이 꿈틀대는 우아한 세계를 얄팍한 천 조각이 뒤덮는다. <우리는 이 안에 있다> 시리즈에서는 물질을 상징하는 금괴와 자동차, 미를 상징하는 꽃그릇들이 존재하고, 가장 높은 곳에 인간의 해골 형상이 있다. 끊임없이 다가가고 끊임없이 쥐려고 하는 것 위에 허망한 삶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물질이 도구가 아니라 수단이 되는 사회. ‘무언가’를 위해 돈이 필요했는데, ‘무언가’는 어느새 실체가 없어지고 지폐 조각들만 휘적거린다. 그러다 보면 애초에 필요한 것은 ‘무언가’가 아닌 단지 나를 휘감을 물질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위대한 욕망들이 테이블보 아래서 숨을 죽이고 나를 지켜본다.

3. ‘농부가 허리를 숙여 밭에 모종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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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Barcelona, 라이벌-Manchester, 각 130×162cm, acrylic on canvas, 윤종석, 2009 (출처: neolook.com)
윤종석은 옷을 접어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시리즈로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며 양복에 붙은 도둑 가시 풀을 보았다. 그리고는 그것에서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매개를 발견한다. 이후에는 방 안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에서 새의 형상을 보았고, 아내가 개어놓은 빨래를 툭 치다가는 ‘옷이 집처럼 보인다.’고 느끼게 되었다.[2] 작가에게 옷은 또 하나의 생명체였다. 주인을 대변하는 기호로 작용하던 옷은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오며 본연의 기능을 잃지만 동시에 또 다른 개체로 작용한다. 벗어버린 옷가지는 죽음 이자 또 다른 탄생이었다. 작가는 한 시간, 혹은 하루에 걸쳐 옷을 특정 형상으로 곱게 접은 뒤, 그것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리고는 그것을 다시 캔버스에 ‘점으로’ 옮겼다.
  

흐르는 생각의 가벼움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 하트, 꽃, 다이아몬드, 왕관), 각 97x97cm, acrylic on canvas, 윤종석, 2013

그는 캔버스를 점으로 가득 매운다. 붓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5cc 주사기에링거용 바늘을 꽂고 아크릴 물감을 담아서 하나하나 쏘아올리는 작업이다. 반짝이는 질감은 마치 영롱한 구슬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봉긋한 점들은 각기 다른 밀도에 의해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이 점 하나가 회화의 출발이 된다. 그리고 점을 찍는 행위는 그리기의 유희라기보단 노동의 과정으로 변모한다. 작가 역시 이에 대해 ‘농부가 허리를 숙여 밭에 모종을 하듯’ [3] 작업하는 것이라 표현한 바 있다. 재현이 다시 재현으로 반복되고 그 노동집약적 작업 아래, 점이 새로운 의미가 되었다. 축구팀 바르셀로나의 유니폼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이 각자 개의 형상이 되어 라이벌로마주 보았고, 이 옷가지들이 현재로 오면서 일상의 테이블과 가죽소파를 덮는 얇은 천이된다.
휴지조각처럼 가벼운 상념들이 떠다니며 하나의 기호를 이룬다. 어느 날에는 다이아몬드로, 어느 날에는 사랑으로 어느 날에는 빛나는 꿈으로. 모든 이들의 욕망이 얄팍한 천 조각으로 화려하게 단장되어 우아한 세계를 꾸미고 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은 것들이 배출되듯,
술을 먹으면 취하고 취하면 길을 잃듯,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가슴이 아프듯,
엄마를 떠올리면 눈물이 흐르듯,
살을 베이면 피가 나오듯,
몸을 태우고 나면 재가 남듯이,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내 작업에 조용히 살며시 천천히 스며들길 바랜다.” 
[4] - 윤종석
[1] <명예훼손이란 무엇인가>, 안상운, ㈜살림출판사 – 살림지식총서 391, 2011
[2] <그림에도 불구하고>, 이원, 김태용, 신욕목, 김민정, 백가흠, 윤종석, 이길우, 이상선, 변웅필, 정재호, 문학동네, 2010, p.43 시인 이원과의 인터뷰 중.
[3] <그림에도 불구하고>, 이원, 김태용, 신욕목, 김민정, 백가흠, 윤종석, 이길우, 이상선, 변웅필, 정재호, 문학동네, 2010, p.32
[4] <우아한 세계>, 아트사이트, 2013, p.36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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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석의 <우아한 세계>는 3호선 경복궁역 근처, 갤러리 아트사이드(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33번지)에서 6월 9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2)725-1020,http://www.artside.org)
 *위 글은 리펠러에 게재되었습니다. (링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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