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에 들렀다가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카페에 앉아있다가, 읽히지도 않는 글을 읽다가, 답답해서 글을 쓰다가, 또 헛소리를 쓰다가 일어났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어서 집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많이 지나갔고, 정말 여러 사람이 있었다. 고기집을 지나갔고 편의점을 지나갔고 은행을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문득 꽃집 앞을 지나가다가, 지나가다가, 걸음이 되감기 되었다.
작은 화분이 하나 있었다. 보통 생각하는 그런 꽃의 모습은 아니었고, 뭔가 꽃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은, 하지만 분명히 저것은 꽃인 그런 화분이 있었다. 노란색, 붉은색, 자주색 색색깔의 꽃이 푸른 잎과 함께 조용히 그곳에 있었다. 그 꽃집 근처가 무척이나 시끄러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화분에 시선을 두고 있는 동안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가 않았다.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화분이 앞에 하나, 뒤에 하나 이렇게 두개가 있었는데, 특히나 앞쪽에 있는 화분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얼마전에 서초역 근처에 새로 발견한 꽃집에서 작은 야생화를 데려왔는데, 내가 분갈이를 잘못해줘서 시들어버렸었다. 내가 자꾸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해서 몸살이 났던 것 같다. 꽃집 아줌마가 '그 화분 꽃피면 아주 예뻐서 환장한다니까' 라고 했었는데, 꽃을 못봤다. 그런 미안한 기억이 있어서, 사실 오늘 본 그 화분도 바로 데리고 오려다가,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 또 그렇게 되면 미안하니까.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그냥 다시 걸었다.
참 희한하게. 말도 없고 시선도 없는 그 꽃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자꾸 나를 붙잡았다. 10분 정도 걸었나. 계속 걸었었는데, 다시 또 10분정도, 나는 그 길을 되돌아갔다. 오늘 그 화분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두고 두고 엄청나게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깟 화분이 뭐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정말 진심으로 그랬었다.
다시 만난 그 꽃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나를 보았다. 예쁜것도 아닌것이 이상한 매력을 가지고 날 쳐다보았다. 이게 뭐지, 하다 조심스레 꽃집안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 이거 무슨 꽃이에요?"
나는 그리 물었고, 아주머니는 "맨드라미에요" 하고 대답했다.
싸구려 비닐봉지에 조금의 흙과 함께 담긴 맨드라미는 조심조심 나와 함께 걸었다. 왠지 모르게 이 꽃은 절대 시들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위로를 삼고 싶어서 였을까, 어찌하였든 나는 맨드라미에게 두가지의 약속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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